제2장 돌봄사회와 사회서비스 체계
7. 돌봄 위기와 사회적 대응
돌봄 위기는 사회 구성원의 돌봄 필요가 증가하는 속도에 비해 이를 충족할 가족·인력·재정·서비스 자원이 충분히 늘어나지 못해 구조적인 불균형이 발생한 상태이다.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 가족 규모의 축소,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지역사회의 변화는 기존의 가족 중심 돌봄 방식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위기는 서비스 양의 부족뿐 아니라 이용자와 가족의 부담, 지역 간 접근성의 차이, 돌봄 노동의 불안정, 재정의 지속 가능성 문제로 나타난다. 따라서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고 보편적인 사회적 권리와 필요에 따른 우선 지원 원칙을 함께 적용하며, 증가하는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돌봄 공백과 지역 격차를 줄이도록 인력·재정·기술을 공공의 목표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1) 돌봄 수요의 증가
돌봄 수요의 증가는 인구의 연령 구조뿐 아니라 질병과 장애의 형태, 기대수명, 가구 형태, 사회 참여 방식의 변화가 함께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5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20.3%이며, 그 비중은 2036년에 30%, 2050년에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므로 장기적인 돌봄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국가데이터처, 2025). 그러나 고령 인구의 증가를 모든 노인의 의존성 증가와 같게 보아서는 안 되며 건강 상태와 기능, 주거 환경, 사회적 관계망의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아동의 성장 지원,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사회 참여, 정신건강의 회복, 질병 이후의 재활도 돌봄 수요에 포함되므로 이를 노인 장기요양에만 한정할 수 없다. 수요를 전망할 때는 대상자 수만 계산하지 말고 필요한 지원의 정도와 시간, 기간, 제공 장소, 의사소통 방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돌봄 수요는 개인에게 한 가지 서비스만 필요한 형태보다 건강, 일상생활, 주거, 소득, 관계의 문제가 겹치는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사회서비스의 필요를 대상별로 나누기만 하면 여러 문제가 동시에 있는 가구의 실제 생활과 서비스 조정의 필요성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박세경 외, 2021). 처음에는 낮은 수준의 예방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필요도 적절한 서비스가 늦어지면 위기 개입이나 시설 입소가 필요한 높은 수준의 수요로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정기적인 실태 조사와 행정 자료뿐 아니라 이용자·가족·현장 종사자의 경험을 통해 잠재적인 수요와 충족되지 않은 필요를 파악하고, 건강 유지와 주거 안정, 사회적 관계, 가족 지원을 통해 돌봄 필요가 커지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2) 가족 돌봄 부담과 돌봄 공백
가족 돌봄 부담은 돌봄에 드는 시간과 직접 비용뿐 아니라 수면 부족, 건강 악화, 소득 감소, 경력 중단, 관계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을 포함한다. 공식적인 노인 돌봄 자원의 이용이 확대되더라도 가족 돌봄이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으므로,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족 부담이 실제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상우, 2022). 부담의 정도는 이용자에게 필요한 지원 수준과 가족의 건강, 고용 형태, 소득, 동거 여부, 성별 분업,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돌봄을 전담하면 가족 구성원 사이의 책임이 불공정하게 나뉘고 돌봄자와 이용자 모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 가족 돌봄자를 서비스 제공의 보조 인력으로만 보지 말고 휴식과 상담, 소득 보장, 건강 지원이 필요한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돌봄 공백은 돌봄이 필요한 시간에 적절한 사람이 없거나 서비스의 자격·시간·비용·장소가 실제 필요와 맞지 않아 지원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대상자 선정 기준과 공급 부족 등으로 방과 후 돌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여 공적 서비스 확대와 필요 중심 선정의 중요성이 확인되었다(김주리 외, 2021). 야간·주말·휴일이나 보호자의 질병과 갑작스러운 부재처럼 정규 서비스가 운영되지 않는 시간에는 돌봄 공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퇴원, 시설 퇴소, 학교 입학과 졸업, 성인기 전환, 돌봄자의 사망과 같은 전환기에도 담당 제도가 바뀌면서 서비스가 끊길 수 있으므로, 긴급 돌봄과 단기 보호, 가족 돌봄자 휴식 지원, 운영 시간 확대, 대체 인력, 전환기 사례 조정을 일상적인 전달 체계 안에 마련해야 한다.
3) 지역 간 돌봄 격차
지역 간 돌봄 격차는 거주 지역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와 제공량, 대기 기간, 이동 거리, 인력의 전문성,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인구 밀도가 낮고 교통이 불편한 농어촌과 도서 지역은 이용자가 분산되어 기관 운영비와 종사자의 이동 부담이 커지므로, 시장 중심의 공급 방식만으로 필요한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 2026년 시행된 사회서비스 취약지 지원은 도서·벽지 등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이동 지원, 일상 돌봄, 식사 지원, 기술을 결합한 지역 맞춤형 공급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중앙사회서비스원, 2026). 대도시에서도 기관 수가 많다는 사실과 관계없이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공급 부족, 높은 주거비로 인한 인력 유출, 복잡한 대기 절차로 접근성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지역 격차는 단순한 기관 수가 아니라 주민의 돌봄 필요, 실제 이용 가능 시간, 이동 가능성, 대기 기간, 서비스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측정해야 한다.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기본적인 돌봄권을 보장하려면 국가가 서비스별 최소 기준을 정하고 취약 지역에 더 많은 재정과 인력을 배분하는 공정한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능력만으로 서비스 수준이 결정되지 않도록 국고 지원은 고령화율, 장애인 인구, 저소득 가구, 지리적 분산, 교통 여건을 반영하여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 생활권 단위의 공동 인력 운영, 순회 서비스, 이동 지원, 소규모 다기능 기관, 기관 간 시설 공유는 수요가 분산된 지역의 공급 기반을 보완할 수 있다. 비대면 상담과 원격 점검도 거리를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대면 서비스를 대신해서는 안 되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별로 충족되지 않은 필요와 대기 현황, 서비스 결과를 공개하고 격차가 계속되는 지역의 공급 계획과 재정 배분을 조정해야 한다.
4) 돌봄 인력과 재정의 지속가능성
돌봄 인력의 지속 가능성은 필요한 수의 종사자를 채용하는 것과 함께 숙련된 인력이 건강하게 일하며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노동 환경을 만드는 문제이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높은 신체적·정서적 부담, 부족한 사회적 인정은 장기요양 인력의 유입과 장기 근무를 어렵게 하고 서비스의 질과 연속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OECD, 2023a). 인력 부족을 단기 교육을 통한 인원 확대로만 해결하면 여러 가지 필요에 대응하는 능력과 안전 관리, 권리 보호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적절한 임금과 안정적인 근로 시간, 휴식권, 산업 안전, 교육 시간, 경력 개발, 대체 인력 체계를 서비스 가격과 공적 재정에 반영해야 한다. 이주 노동자와 가족 돌봄자 등 새로운 인력을 활용할 때에도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동등한 노동권과 교육,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해야 한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이용자가 필요한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계속 이용하도록 재원과 사회적 합의를 확보하는 상태이다. 돌봄에 대한 공공 지출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가족의 건강과 고용, 돌봄 노동자의 일자리, 지역사회의 생활 기반을 지원하는 사회적 투자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무급 돌봄의 인정·감소·재분배와 유급 돌봄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대표성의 보장은 질 높은 돌봄 체계를 만들기 위한 서로 연결된 정책 과제이다(ILO, 2018).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려면 세금과 사회보험, 본인 부담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소득과 돌봄 필요에 따라 비용을 공정하게 나누며, 단기적인 이용 건수의 절감보다 예방과 재가 생활의 유지, 가족 부담의 감소, 노동 조건, 서비스 성과를 장기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5) 기술 도입을 통한 돌봄체계 변화
인공지능, 로봇, 센서, 모바일 기기, 디지털 플랫폼의 도입은 개별 보조기기의 사용을 넘어 수요 예측, 서비스 신청, 정보 공유, 인력 배치, 제공 기록, 위험 관리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 기술은 반복적인 행정 업무를 줄이고 이동이 어려운 이용자의 접근성을 보완하며 생활 환경의 변화를 일찍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이용자의 기능과 선호에 맞춘 의사소통과 일상생활 지원은 자기결정과 지역사회 생활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나 알고리즘이 개인의 생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빠뜨리거나 위험성이 높은 사람으로 잘못 분류할 수 있다. 돌봄 기술은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도입하지 말고 인간의 자율성, 안전, 투명성, 공적 책임을 중심으로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WHO, 2021a). 기술을 활용한 돌봄 체계는 디지털 이용이 어려운 사람의 소외, 개인정보 유출, 일상에 대한 지나친 감시, 기기 오류,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만들 수 있다. 기술의 도입과 사용 중단에 관한 이용자의 동의를 보장하고, 알고리즘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사람의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하고 공정성, 포용성, 투명성, 인간의 감독을 보장하는 원칙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UNESCO, 2021). 공공기관은 기술을 구매하기 전에 실제 필요와 다른 대안을 살펴보고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와 오류, 업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며, 계약 종료 이후의 데이터 반환과 서비스의 연속성을 확보하여 기술이 이용자의 삶과 선택, 종사자의 전문적인 판단, 돌봄 체계의 접근성과 책임성을 높이는지 확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