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 시대의 돌봄서비스 099. 돌봄노동과 기술의 미래

제13장 AI·로봇 시대의 사회복지 실천과 정책 과제

8. 돌봄노동과 기술의 미래

AI와 로봇의 확산은 돌봄 노동을 단순히 없애기보다 업무의 구성, 책임, 필요한 역량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돌봄은 신체적 지원뿐만 아니라 관계 형성, 감정의 이해, 윤리적 판단, 상황에 따른 조정을 포함하므로 모든 과업을 기술로 표준화하기 어렵다. 기술은 반복적인 업무와 위험한 작업을 줄일 수 있지만, 비용 절감과 인력 감축의 수단으로만 도입되면 남은 업무의 강도와 노동자의 책임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 따라서 기술 도입의 성과는 기기 수나 자동화율이 아니라 이용자의 삶의 질과 돌봄 노동자의 안전, 자율성, 숙련도, 전문성이 함께 향상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돌봄의 미래는 인간과 기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돌봄과 양질의 일자리를 동시에 보장하는 협업 구조를 설계하는 문제이다(ILO, 2018).

1) 돌봄노동의 대체 가능성

돌봄 노동의 대체 가능성은 직업 전체보다 직업을 구성하는 개별 과업을 기준으로 분석해야 한다. 일정 안내, 기록 정리, 단순한 모니터링, 물품 운반은 자동화하기 비교적 쉽지만, 위기 상황의 판단, 정서적 지지, 갈등 조정, 이용자의 생활 맥락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생성형 AI의 노동 시장 영향도 직업 전체의 소멸보다 일부 과업의 자동화와 인간 업무의 보완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Gmyrek et al., 2023). 같은 직종에서도 기관의 업무 방식, 이용자의 욕구, 기술의 성능, 규제 수준에 따라 자동화할 수 있는 과업과 범위가 달라진다. 따라서 제한된 환경에서 이루어진 기술 시연만으로 돌봄 직업이나 인력 전체를 대체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이다. 기술이 특정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과업을 사람에게서 완전히 이 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은 구분해야 한다. 야간 순회나 위험 감지의 자동화는 인력 부족을 보완할 수 있지만, 오작동이나 예외 상황에 대응할 사람이 없다면 새로운 안전 공백이 발생한다. 인력난을 이유로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최소한의 적정 인력, 긴급 대응, 인간 돌봄을 요청할 권리, 고장 시 대체 서비스를 유지해야 한다. 자동화로 절약된 비용과 시간은 인력 감축에만 사용하지 않고 근로 시간과 처우의 개선, 교육, 안전 관리, 직접적인 돌봄의 질 향상에 재투자할 필요가 있다. 돌봄 노동의 대체에 관한 판단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뿐만 아니라 사회가 보장하려는 돌봄 관계, 서비스 수준, 노동 조건을 함께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ILO, 2025a).

2) 돌봄업무의 재구성

AI와 로봇이 도입되면 일부 기존 업무가 줄어드는 동시에 결과 확인, 오류 수정, 기기 관리, 이용자 설명, 데이터 품질 관리, 공급업체 연락 같은 새로운 업무가 발생한다. 기록 자동화가 문서 작성 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시스템이 작성한 초안을 검토하고 잘못된 내용을 정정하는 책임은 사회복지사와 돌봄 노동자에게 남을 수 있다. 위험 예측 도구는 사례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노동자는 점수에 나타나지 않는 가족관계, 주거 환경, 이용자의 의사를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업무 재구성은 자동화로 감소한 과업과 새롭게 발생하거나 강화된 과업을 함께 파악하여 직무 기술서, 업무 분장, 사례 수, 인력 기준을 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AI는 고용 인원의 변화에 앞서 직무의 내용, 책임,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Gmyrek et al., 2023; OECD, 2023b). 새로운 업무가 공식적인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종사자는 기존의 대면 돌봄과 디지털 관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이중 부담을 지게 된다. 기관은 기기 설정과 충전, 오류 신고, 데이터 정정, 이용자 교육, 알림 확인, 장애 대응에 필요한 시간을 표준 업무량에 포함해야 한다. 기술 도입으로 줄어든 업무와 증가한 업무를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결과에 따라 인력 배치와 담당 사례 수를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직무를 재설계할 때는 기술 활용 능력만 강조하지 말고 공감, 윤리적 판단, 의사소통, 관계 형성, 권리 옹호 같은 인간 전문성의 가치를 명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업무 재구성은 노동자의 숙련과 판단권을 축소하는 방향이 아니라 반복적인 부담을 줄이고 전문적인 돌봄에 집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OECD, 2023a; ILO, 2026).

3) 노동강도와 업무 부담

로봇은 이승과 운반 같은 육체적 부담을 줄이고 AI는 기록 정리와 정보 검색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할 가능성이 있다. 위험한 작업을 자동화하고 안전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면 근골격계 부담과 업무상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기관이 기술로 절약된 시간을 더 많은 사례와 빠른 처리 속도로 채우면 노동 강도는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실시간 경보와 지속적인 연결은 업무와 휴식의 경계를 흐리고 노동자가 근무 시간 밖에도 즉시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만들 수 있다. AI와 자동화는 일부 업무를 완화할 수 있지만, 알고리즘에 의한 업무량 설정, 촘촘한 일정 배정, 상시 접속은 스트레스와 소진을 증가시킬 수 있다(ILO, 2025b). 업무 부담을 평가할 때는 처리 건수뿐만 아니라 경보 확인, 오류 수정, 기기 장애 대응, 이용자와 보호자에 대한 설명, 감정 노동, 판단 책임을 포함해야 한다. 여러 시스템이 같은 정보를 각각 요구하면 자동화 이후에도 이중 입력과 반복 확인이 남아 행정 부담이 줄지 않을 수 있다. 경보가 지나치게 많거나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경보 피로가 발생하여 중요한 위험을 놓칠 가능성도 커진다. 기관은 도입 전후의 근로 시간, 휴게 시간, 초과근무, 사고, 통증과 소진, 이용자 대면 시간, 업무 중단을 비교하여 실제 효과를 평가해야 한다. 기술 도입 이후 업무 강도가 높아진 경우에는 개인의 적응 문제로 돌리지 말고 경보 기준, 사례 수, 인력 배치, 당직 체계, 시스템 설계를 조정해야 한다(OECD, 2023a; ILO, 2025b).

4) 디지털 감시와 노동권

돌봄 기술은 이용자의 안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위치, 이동 경로, 응답 시간, 대화, 업무 순서, 처리 속도까지 지속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가 안전과 서비스 개선의 범위를 넘어 노동자를 실시간으로 통제하거나 성과 순위, 징계, 인사 결정, 계약 종료에 사용되면 디지털 감시의 문제가 발생한다. 클릭 횟수, 방문 시간, 처리 건수처럼 측정하기 쉬운 지표만 강조하면 경청, 정서적 지지, 관계 형성, 위기 예방처럼 수치화하기 어려운 돌봄 활동이 저평가될 수 있다. 노동자는 어떤 정보가 수집되고 누가 접근하며 어떤 업무 배정과 평가·인사 결정에 사용되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AI가 노동자의 행동을 추적하여 업무를 배정하거나 성과를 평가하면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전문적 자율성이 감소할 수 있다(OECD, 2023b; Eurofound, 2025). 직장 내 개인정보 처리는 업무상 필요성과 비례성을 갖추고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 고용 관계에서는 사용자의 권한과 노동자의 지위가 대등하지 않으므로 형식적인 동의만으로 과도한 감시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기관은 수집 항목, 이용 목적, 보유 기간, 접근자, 평가 기준,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설명·재검토 절차를 취업규칙과 내부 지침 등에 명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휴게 시간과 탈의실 같은 사적 공간은 원칙적으로 추적 대상에서 제외하고, 안전 목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징계나 성과 평가에 사용하려면 목적 변경의 필요성과 적법성을 엄격하게 검토해야 한다. 감시 기술과 알고리즘 관리 도구의 도입이나 중대한 변경은 노동자와 대표 기구에 사전에 설명하고 협의하며 실제 영향을 정기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OECD, 2023b).

5) 인간-기술 협업모델

인간-기술 협업 모델은 기술과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을 나누고 취약한 지점에서 서로 보완하도록 업무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로봇은 반복적인 운반, 일정한 힘의 제공, 정밀한 측정을 담당하고 AI는 많은 자료에서 변화와 위험의 패턴을 제시할 수 있다. 인간 노동자는 이용자의 말과 행동을 생활 맥락에서 해석하고 예외 상황에서 가치 갈등을 조정하며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협업 과정에는 기술이 제시한 결과를 사람이 검토하고 사람이 발견한 맥락, 오류, 개입 결과를 다시 시스템과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는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최종 목표는 기술의 처리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돌봄을 제공하는 데 있다(WHO, 2021a).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서는 사람과 기술 사이의 업무 인계 지점, 권한, 책임, 비상 상황에서의 수동 전환 절차를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스템이 위험을 감지하는 일과 그 위험을 확인하여 방문·의료 연계 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구분하고 각 단계의 담당자와 대응 시간을 정해야 한다. 노동자는 시스템의 작동 원리와 한계를 이해해야 하며, 기술 담당자도 돌봄 현장의 업무 흐름, 이용자의 권리, 윤리적 요구를 이해해야 한다. 교육에는 조작법뿐만 아니라 오류의 발견과 보고, AI 권고의 수정·거부, 개인정보 보호, 장애 대응, 이용자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 모의 훈련과 실제 사례 검토를 통해 사람과 기술 사이의 정보 누락, 과신, 업무 중복, 책임 공백을 반복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AI 교육과 노동자 협의가 함께 이루어질 때 기술에 대한 신뢰와 직무 성과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OECD, 2023b).

6) 돌봄노동자의 참여

돌봄 노동자는 이용자의 반응, 예외 상황, 실제 업무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파악하므로 기술의 설계와 평가에 필요한 실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의 참여는 완성된 제품에 대한 의견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정의, 요구 사항 작성, 제품 선정, 시범 운영, 배치, 사후 평가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참여 자에는 다양한 직종, 고용 형태, 경력, 근무 시간대, 교대조의 노동자를 포함하여 일부 관리자나 숙련자의 경험만 반영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현장 노동자가 반복적으로 사용을 우회하는 기능, 별도로 작성하는 기록, 사용을 꺼리는 상황은 시스템과 실제 돌봄 사이의 불일치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내 간호 현장에 관한 연구도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실제 개발되는 기술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참여적 설계가 중요함을 보여 준다(Cheon & Lee, 2026). 노동자 대표와 노동조합은 기술 도입이 고용, 임금, 업무량, 안전, 전문적 재량, 개인정보에 미치는 영향을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기관은 기술에 대한 문제 제기나 오류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보호하고 익명 신고, 정기 회의, 개선 결과 공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에게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용을 중지하고 위험한 기능이나 업무 절차의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경로가 필요하다. 자동화로 생산성과 재정적 편익이 발생하면 그 성과를 임금과 처우 개선, 적정 인력 확보, 노동 시간 단축, 안전 관리, 교육에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 돌봄 노동자의 참여는 기술의 수용을 높이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돌봄의 질과 양질의 일자리를 함께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의 핵심이다(OECD, 2023a; ILO, 2024).

AI·로봇 시대의 돌봄서비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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