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014.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 권리 기반 접근의 가능성

제3장 해외사례가 보여주는 네 가지 제도화 방식

4.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 권리 기반 접근의 가능성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에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어떤 권리를 보장받으며,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돌봄을 제공하는가이다. 돌봄은 사람의 몸과 마음, 일상과 존엄에 직접 관여하는 노동이다. 따라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권리가 취약하고 생활이 불안정하다면 안정적인 돌봄 역시 지속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노동권과 인권 문제는 부가적인 처우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체계의 안정성과 서비스 질을 결정하는 핵심 조건이다.

영국·호주·독일의 경험은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에서 노동권, 인권, 사회적 포용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세 국가는 장기요양체계, 이민정책, 노동시장 구조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권리보장이 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돌봄 인력 부족과 이민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외국인 돌봄노동자의 체류 안정성과 권리 문제가 부각되었다. 호주는 다문화 사회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주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사회적 포용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독일은 사회보험 기반 장기요양체계를 운영하 지만, 외국인 돌봄인력의 자격 인정, 공정 채용, 차별 방지와 사회통합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들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권리보장이 선택적 배려가 아니라 돌봄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건이라는 점이다.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는 오래 머물기 어렵고, 장기근속이 어렵다면 숙련도 축적되기 어렵다. 숙련이 축적되지 않으면 이용자와 가족의 신뢰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권과 인권은 서비스 질과 분리될 수 없다. 좋은 돌봄은 안정된 노동조건 위에서 가능하다.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단순한 인력 수급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 모델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자, 이용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돌봄의 주체이며,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입국 허용이나 취업 알선에만 머물지 않는다. 적정 임금, 안전한 근로환경, 체류 안정성, 차별 방지, 권리구제 접근성, 언어·문화 지원, 지역사회 참여와 같은 요소들이 함께 고려된다. 이 관점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은 노동정책, 복지정책, 이민정책, 사회통합정책이 결합된 사회정책이다.

이 접근은 앞서 살펴본 여러 해외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는 의미도 가진다.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은 인력난 완화에는 일정한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노동권과 서비스 질을 취약하게 만들 위험이 컸다. 자격·언어·교육 중심 모델은 품질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실제 충원과 정착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공공체계와 비공식 노동의 병존 모델은 공적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제도 밖 또는 제도 안의 불안정 노동이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은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의 성패가 결국 권리와 관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영국은 이러한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영국은 오랫동안 성인 사회돌봄 분야에서 이주노동자에 상당 부분 의존해 왔다. 사회돌봄 영역은 낮은 임금, 높은 노동강도, 인력 이탈, 지역별 인력 부족 문제를 겪어 왔고, 외국인 돌봄노동자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출신 노동자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돌봄 인력 부족은 더욱 심화되었고, 영국 정부는 건강·돌봄 비자를 통해 해외 돌봄인력 유입을 확대하였다(Kharicha et al., 2023).

건강·돌봄 비자는 돌봄 부문의 인력난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조치였다. 돌봄기관은 해외 인력을 공식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했고, 외국인 노동자 역시 합법적으로 영국 돌봄 분야에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동시에 새로운 취약성을 드러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체류 자격이 고용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노동자가 특정 고용주에게 종속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고용주를 바꾸기 어렵거나 일자리를 잃을 경우 체류 자격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불안은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경험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국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비자 제도가 단순한 출입국 관리 장치가 아니라 노동권과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체류 자격이 특정 고용주와 강하게 결합될 수록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과도한 업무 지시, 휴게 미보장과 같은 문제에 취약해질 수 있다. 법적으로는 합법 취업 상태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 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이 합법적 입국 경로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노동자가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구조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영국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주 돌봄노동자들이 낮은 임금, 과도한 근무시간, 비자 종속성, 차별과 괴롭힘, 채용 과정의 부당 비용을 경험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면서, 돌봄 분야 이주노동자의 권리보호는 중요한 정책 의제가 되었다 (UNISON, 2025). 이는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합법적 지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 노동권 행사 가능성과 권리구제 접근성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국의 경험은 돌봄 인력 확보와 이민 규제가 충돌할 때 나타나는 문제도 보여준다. 한편으로 국가는 돌봄 인력 부족을 이유로 외국인 인력 유입을 확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 통제를 강화하며 가족 동반 제한이나 비자 요건 강화를 추진한다. 이는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필요한 노동력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장기적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주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돌봄노동은 관계 형성과 장기근속이 중요한 노동이다. 노동자가 계속 교체되는 구조에서는 이용자와 가족의 신뢰가 안정적으로 형성되기 어렵고, 기관 역시 반복적인 신규 교육 부담을 떠안게 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단기적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는 접근은 돌봄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호주는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을 다문화 사회의 맥락에서 보여주는 사례이다. 호주는 이민사회로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력이 돌봄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노인돌봄 부문에서도 이주 배경 노동자가 시설돌봄과 재가돌봄, 지역사회 돌봄의 중요한 인력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라는 사실이 곧바로 포용적 노동환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호주의 이주 돌봄노동자 역시 낮은 임금, 불규칙한 근무, 높은 업무강도, 직무 스트레스,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 차별과 지역사회 고립을 경험할 수 있다(Feldman & Rittinghausen, 2025; Winarnita et al., 2025).

호주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사회적 포용이 단순한 친절이나 문화행사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포용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존중받고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며, 동료와 관계를 형성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다면 제도는 포용적 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포용은 노동환경과 지역사회 환경 전체를 포함하는 문제이다.

호주의 다문화 돌봄 현장은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돌봄노동자는 다문화 이용자에게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같은 언어권이나 문화적 배경을 공유할 경우 의사소통과 정서적 신뢰 형성이 더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갈등과 오해도 발생할 수 있다. 이용자의 식습관과 종교, 가족관계와 예절,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인식 차이는 돌봄 현장에서 실제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다문화적 배경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교육하고 조정할 것인가이다.

호주의 경험은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지역사회 연결이 중요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이주노동자는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며 언어, 문화, 노동 스트레스를 동시에 경험한다. 이때 동료, 지역 커뮤니티, 종교 공동체, 이주민 네트워크는 적응과 회복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연결망은 단순한 사적 관계를 넘어 노동 지속성과 정서적 안정의 기반이 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일터 밖에서도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을 때 장기근속과 서비스 안정성 역시 높아질 수 있다.

독일은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을 제도적 정합성과 권리보장 측면에서 보여준다. 독일은 사회보험 기반 장기요양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전문인력을 공식 노동시장으로 편입하기 위해 자격 인정 제도와 국제 채용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왔다(Peppler, 2024). 대표적으로 독일의 인정법(Anerkennungsgesetz, Federal Recognition Act)은 외국에서 취득한 직업 자격을 독일 내에서 평가·인정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가 비공식 저숙련 노동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절차의 복잡성, 언어 능력, 행정 비용, 정보 접근성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Ritter, 2024).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포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실제로 접근 가능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행정 절차를 수행할 수 있으며,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을 때 신고하고 구제받을 수 있어야 실질적 권리보장이 가능하다.

독일 사례는 국제 인력 채용에서 공정성이 중요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돌봄 인력 부족이 심화될 수록 국가 간 인력 유치 경쟁은 강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과도한 중개수수료, 허위 계약, 채무 부담, 정보 비대칭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독일은 필리핀 등과의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공식적이고 관리 가능한 채용 경로를 만들고 공정 채용 원칙을 강화하려 했다 (Peppler, 2024; Engelhardt et al., 2025). 이는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권리보장이 입국 이후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모집과 선발, 송출 단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독일은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제도 안에서도 차별과 배제를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자격을 갖추었더라도 출신 국가, 언어, 문화적 배경에 따라 낮게 평가되거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 이는 노동권의 문제이자 동시에 인권의 문제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제도권 안에 편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까지 포함한다.

영국·호주·독일 사례를 종합하면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의 핵심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안정적인 체류 지위를 가져야 한다. 둘째, 노동권은 내국인과 동일한 기준에서 보장되어야하며, 체류 자격이나 언어 장벽 때문에 권리 행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언어·문화·상담·커뮤니티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넷째, 제도 설계와 평가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체류가 불안정하면 노동권 행사가 어렵고, 노동권이 취약하면 장기근속도 어렵다. 지역사회에서 고립되면 정서적 소진이 심화되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으면 제도는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이 모델이 중요한 이유는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취약성이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동자로서 낮은 임금과 높은 노 동강도에 노출될 수 있고, 외국인으로서 언어와 체류 자격의 제약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돌봄노동자로서 감정노동과 신체노동의 부담을 감당해야 하며, 여성 노동자가 많은 경우 젠더화된 저평가와 성희롱 위험에도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근로계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복합적 취약성을 고려한 권리보장과 포용의 구조가 필요하다.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모델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돌봄체계의 지속 가능한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임금과 권리, 정착지원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서비스 질과 장기근속, 이용자 신뢰와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투자이다. 권리보장은 도덕적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안정적으로 일하고, 이용자가 신뢰할 수 있는 돌봄을 받으며, 장기요양체계가 지속 가능하게 작동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한국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가 처음부터 권리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별도 노동시장에 묶어두거나, 체류 자격과 고용관계를 지나치게 결합시키고, 권 리구제와 사회적 포용을 부수적 문제로 다룬다면 제도는 장기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는 인력 확보를 넘어 노동권 보장, 공정 채용, 차별 방지, 권리구제 접근성, 지역사회 정착과 사회적 포용을 함께 포함해야 한다.

결국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단순한 인력정책이 아니라 돌봄의 공공성과 노동의 권리, 인간의 존엄을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다. 영국·호주·독일의 경험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임시 인력 보충 수단으로 보는 접근이 돌봄체계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돌봄의 빈자리를 메우는 사람이 아니라, 돌봄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갈 주체로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표지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