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언어·자격·교육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3. 자격 기준은 높이되 진입 경로는 단계화해야 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에서 자격 기준은 가장 민감하면서도 핵심적인 쟁점이다. 기준이 지나치게 낮으면 단기간 인력 확보는 가능할 수 있지만, 돌봄서비스의 질과 이용자 안전, 가족의 신뢰와 사회적 수용성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기준이 지나치게 높으면 전문성과 품질은 강화될 수 있으나 실제 현장에 필요한 인력이 충분히 유입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핵심은 기준을 낮출 것인가 높일 것인가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돌봄의 전문성을 유지할 만큼 기준은 분명히 하되, 외국인 근로자가 단계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 경로를 함께 설계하는 데 있다.
돌봄은 누구나 즉시 수행할 수 있는 단순노동이 아니다. 식사와 이동, 목욕과 배설 지원뿐 아니라 치매 노인의 불안을 완화하고, 가족과 소통하며, 응급상황을 판단하는 과정까지 포함되는 전문적 사회서 비스이다. 특히 고령 이용자는 신체기능 저하와 만성질환, 인지기능 변화, 정서적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돌봄근로자의 태도와 기술, 언어와 판단 능력은 서비스 질을 좌우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 기준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제도 관리가 아니라 이용자의 안전과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자격 기준은 이용자뿐 아니라 외국인 돌봄근로자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충분한 교육과 기준 없이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는 자신의 업무 범위와 거절할 수 있는 요구를 구분하기 어렵다. 이 경우 가족 전체를 위한 가사노동, 위험한 신체지원, 유사 의료행위에 가까운 업무까지 떠안을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자격과 교육 기준이 명확하면 노동자는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설명할 수 있고, 기관 역시 적절한 업무를 배정할 수 있다. 자격은 외국인 근로자를 단순 보조 인력이 아니라 전문 기준을 갖춘 돌봄노동자로 위치시키는 장치이다.
자격 기준은 사회적 수용성과도 연결된다. 이용자와 가족은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어떤 교육과 평가를 거쳐 현장에 배치되는지 알 때 더 큰 신뢰를 가질 수 있다. 내국인 요양보호사 역시 외국인 근로자가 지나치게 낮은 기준으로 유입된다고 느낄 경우 직업적 지위가 약화된 다는 불안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돌봄근로자에게도 공식적인 교육과 자격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단순한 저비용 대체 인력이 아니라 동일한 돌봄체계를 구성하는 공식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격 기준을 높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준이 지나치게 높거나 획일적으로 적용될 경우 실제 인력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어 능력이나 국가자격, 현 장경험을 처음부터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요구할 경우 외국인 근로자는 긴 준비 기간과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국가나 산업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커진다. 일본은 외국인 개호 인력에게 높은 일본어 능력과 국가자격 취득을 요구하며 돌봄의 전문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높은 시험과 자격 요건이 실제 정착률과 인력 확보를 제한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주찬희, 2023; 박수경, 2024). 이는 자격 기준 자체는 필요하지만, 그 기준이 현실적으로 도달 불가능한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전문가만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장 가능한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입국 시점부터 모든 역량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신 입국 전 최소 기준, 입국 후 브리징 교육, 현장실습, 초급 배치, 보수교육과 자격 취득, 전문교육과 장기근속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자격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서비스 질을 유지하면서도 외국인 근로자가 제도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현실적 경로를 제공한다. 핵심은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다리를 제도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자격체계는 최소한 세 단계로 설계할 수 있다. 첫째는 입국 전 최소 기준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기초 한국어, 돌봄윤리, 감염관리, 노동권 이해, 건강 상태와 범죄경력 확인 등을 통해 기본 적합성을 확인한다. 둘째는 현장 배치 전 단계이다. 브리징 교육과 실습을 마친 뒤 실제 이용자에게 배치되기 전에 이동·식사·위생 지원, 응급상황 보고, 가족 및 기관과의 기본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한다. 셋째는 전문 자격 및 경력 단계이다. 일정 기간 근무와 추가 교육, 직무 한국어 향상과 자격 취득을 통해 치매전문 돌봄, 중증돌봄, 멘토 역할과 같은 더 높은 단계의 직무로 이동할 수 있도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단계적 자격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외국인 근로자의 출발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본국에서 간호나 요양 경험을 갖고 있지만 한국어 기록과 보고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한국어 적응은 빠르지만 돌봄기술 경험이 부족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교육과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며, 불필요한 반복과 배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자격체계는 개인별 역량을 진단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자격 기준을 높인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돌봄 현장에서는 이용자를 안전하게 부축하는 능력, 치매 노인의 반복 질문에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 가족에게 상태 변화를 설명하는 능력, 사고 발생 시 기관에 보고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자격 평가는 필기시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구술평가와 실기, 현장 수행평가를 함께 포함해야 한다. 특히 직무 한국어는 일반 회화와 구분되는 현장 언어이므로 단계별 자격 기준 속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안전과 기본 돌봄에 필요한 최소 표현을, 이후에는 기록·보고와 치매 돌봄, 가족 응대에 필요한 언어를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무엇보다 “우선 사람을 데려오고 나중에 교육하면 된다”는 방식은 위험하다. 돌봄 현장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인력을 실험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과 자격 없이 배치된 외국인 근로자에게서 초기 실패 사례가 발생하면, 이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지나치게 높은 기준만 강조하면 현장은 다시 비공식 고용이나 자격 없는 인력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자격 기준은 높은 목표와 유연한 경로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브리징 자격 또는 전환 자격 개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간호보조나 요양 관련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한국 자격과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일정한 보완교육과 평가를 통해 한국 기준에 맞게 전환할 수 있는 경로가 필요하다. 본국 경험을 모두 무시하고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다시 요구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무조건적인 자격 인정은 한국 돌봄체계의 안전과 품질 기준을 흔들 수 있다. 따라서 자격 상호인정과 보완교육을 결합한 단계적 전환 구조가 필요하다.
자격 기준은 업무 범위와도 연결되어야 한다. 모든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처음부터 동일한 업무를 수행할 필요는 없다. 초기에는 식사 보조와 말벗, 기본 관찰과 보고처럼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업무부터 시작하고, 이후 교육과 평가를 거쳐 신체지원과 치매 돌봄, 중증 이용자 지원 등 더 높은 단계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단계화가 외국인 근로자를 영구적인 보조 인력으로 고착시키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정한 교육과 평가를 거치면 더 높은 자격과 임금, 역할로 이동할 수 있는 성장 경로가 함께 마련되어야한다.
자격 기준은 임금과 경력체계, 체류 안정성과도 연결되어야 한다. 자격을 취득하고 직무역량이 향상되었는데도 역할과 임금이 그대로라면 장기근속의 동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치매전문교육 이수, 장기근속, 멘토 역할 수행이 임금 상승과 체류 연장, 경력 인정으로 연결된다면 외국인 근로자는 돌봄 분야 안에서 장기적인 경력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다만 자격과 체류를 연계할 경우 기관이 노동자의 체류를 과도하게 통제하지 않도록 평가 기준의 투명성, 재교육 기회, 이의제기 절차가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자격체계의 신뢰성을 위해서는 교육기관과 실습체계의 질 관리도 중요하다. 교육기관이 형식적 수료만 반복하고 실제 현장 역량을 충분히 길러내지 못한다면 자격 자체의 신뢰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실습은 단순 노동력 활용이 아니라 숙련 형성을 위한 교육과정 이어야 한다. 지도자 배치와 안전 기준, 이용자 사생활 보호, 실습생 권리 보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실습이 저임금 노동이나 기관의 인력 보충 수단으로 운영될 경우 자격체계의 정당성은 흔들릴 수 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자격체계는 내국인 요양보호사 제도와의 정합성도 유지해야 한다. 외국인에게 지나치게 낮은 별도 기준을 적용할 경우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직업적 지위와 노동조건이 약화될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면 외국인 노동자에게 과도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적인 돌봄 역량과 서비스 기준은 국적과 관계없이 유지하되, 외국인 근로자에게 필요한 언어교육과 제도 이해, 문화 적응, 권리 안내는 추가적인 지원 체계로 제공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차이는 권리와 기준의 차별이 아니라 지원 방식의 차이로 설계되어야 한다.
결국 자격 기준과 진입장벽은 구분되어야 한다. 자격 기준은 이용자 안전과 돌봄 전문성, 가족 신뢰와 노동권 보호를 위해 분명히 높 아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가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교육과 브리징 과정, 현장실습과 멘토링, 단계별 업무 배치와 보수교육, 재평가와 경력 인정의 경로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자격체계는 외국인 노동자를 배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제도 안으로 성장시키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는 낮은 기준의 단기 충원 방식도, 지나치게 높은 장벽의 제한적 선발 방식도 아닌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자격체계를 지향해야 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안전하게 시작하고, 현장에서 배우며, 자격과 숙련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돌봄체계의 전문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될 때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단순한 대체 인력이 아니라 한국 돌봄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책임지는 공식적이고 전문적인 돌봄노동자로 자리 잡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