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044. 1단계: 시범사업으로 위험과 가능성을 점검한다

제9장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 로드맵

1. 1단계: 시범사업으로 위험과 가능성을 점검한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돌봄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돌봄근로자 활용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인력 충원 정책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는 장기요양서비스의 질과 이용자 신뢰,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노동시장, 노동권 보호, 지역사회 수용성, 장기요양보험 재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의 출발점은 대규모 확대가 아니라,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의 위험과 현장 작동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대학 제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부는 지역 우수대학을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기관으로 지정하여 유학생 유치부터 학위과정, 자격취득, 취업까지 연계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였다. 전국 24 개 대학이 시범사업 대학으로 선정되었으며, 이들 대학은 2026년부터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대상 요양보호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게 된다(법무부, 보건복지부, 2025). 이는 외국인 인력을 단순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교육과 자격체계를 통해 전문 돌봄인력으로 양성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양성대학 시범사업은 지역 돌봄 인력난과 지역 정착 문제를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학위과정과 한국어 교육, 자격취득과 취업을 연계하면 단기 취업 중심 구조를 넘어 지속 가능한 경력 경로를 설계할 수 있다. 또한 법무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범부처 협력 구조의 초기 모델 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운영 성과를 평가한 뒤 정식사업 전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단계는 어디까지나 검증 단계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시범사업은 단순한 예비 절차가 아니라 장기적 제도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과정이다. 사회정책은 한 번 특정 방식으로 설계되면 이후 수정이 쉽지 않은 경로의존성을 갖기 때문이다(Pierson, 2000). 만약 초기 단계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저비용 대체 인력 중심 구조로 자리 잡는다면 이후 노동권과 서비스 질을 개선하는 데 큰 비용과 갈등이 따를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엄격한 자격 기준만 강조할 경우 실제 인력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고 비공식 고용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시범사업은 단순한 교육 실험이 아니라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의 방향성을 검증하는 단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질문은 “외국인 요양보호사를 얼마나 양성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조건에서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한국 장기요양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자격취득률이나 취업률 같은 양적 성과만으로 시범사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직무 한국어 교육의 적합성, 현장실 습의 질, 취업 이후 멘토링과 감독 체계, 노동권 보호, 이용자와 가족의 신뢰 형성까지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

우선 교육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점검해야 한다. 돌봄은 단순 신체 보조가 아니라 이용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치매 행동에 대응하며, 가족과 의사소통하고, 기관에 상황을 보고하는 복합적 노동이다. 따라서 외국인 요양보호사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 한국어 능력만이 아니라 직무 한국어, 치매 의사소통, 응급상황 보고 능력과 같은 현장 수행 역량이다. 교육의 성과 역시 단순 이수 시간이 아니라 실제 수행능력을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모의상황 평가와 실기평가, 현장실습 평가, 기관 관리자 평가, 이용자와 가족 의견을 함께 반영할 필요가 있다.

자격취득 이후의 취업 연계와 현장 적응도 중요한 검증 대상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자격을 취득하더라도 장기요양기관이 이들을 안정적으로 채용하고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제도는 교육 단계에서 멈출 수 있다. 특히 초기 멘토링과 체류 안정성이 부족할 경우 높은 이직률과 적응 실패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시범사업에 서는 자격취득률뿐 아니라 취업 지속률, 초기 이탈률, 현장 적응도, 장기근속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사회적 수용성 역시 핵심 과제이다. 이용자와 가족은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부모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을지, 언어와 문화 차이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할 수 있다. 내국인 요양보호사 또한 외국인 인력 유입이 임금과 노동조건에 미칠 영향을 걱정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시범사업은 단순한 인식조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제 돌봄 관계 속에서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갈등이 어떻게 조정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가족에게 교육 내용과 업무 범위, 기관 책임, 갈등 조정 절차를 충분히 설명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노동권 보호도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 외국인 요양보호사는 체류 자격과 언어 장벽, 정보 부족으로 인해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계약 외 업무 요구, 차별과 성희롱 등에 취약할 수 있다. 특히 재가 돌봄은 이용자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 발견이 더 어렵다. 따라서 표준근로계약과 다국어 권리 안내, 독립적인 상담 기회와 익명 신고 체계, 외부 상담기관 연계가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신고 창구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가 실제로 문제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배치 방식 또한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초기 단계부터 중증 치매 이용자나 야간 단독 돌봄에 투입할 경우 서비스 사고와 가족 불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 요양보호사의 언어 수준과 현장 경험, 이용자의 중증도와 돌봄 필요도를 함께 고려한 단계적 배치 기준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시설요양이나 주야간보호처럼 팀 기반 관리가 가능한 영역부터 운영하고, 이후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재가 돌봄과 중증 돌봄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배치는 단순한 인력 투입이 아니라 이용자 안전과 근로자 적응을 함께 고려하는 품질관리 과정이어야 한다.

장기요양기관의 준비 수준 역시 중요하다. 기관은 외국인 요양보호사의 현장 적응 지원과 가족 설명, 근로시간 관리, 갈등 조정, 권리보장 체계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시범사업 참여 기관은 멘토 지정과 표준근로계약 적용, 정기 면담, 고충처리 절차, 가족 안내 체계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단순히 인력난이 심한 기관이 아니라 외국인 요양보호사를 교육·보호·관리할 역량을 갖춘 기관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내국인 요양보호사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외국인 인력의 현장 적응 지원이 내국인 노동자의 비공식 부담으로 전가될 경우 갈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련된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멘토 역할을 공식 업무로 인정하고, 멘토 수당과 업무량 조정 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내국인 종사자에게도 다문화 의사소통과 현장 코칭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만 준비시키는 방식으로는 협업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시범사업은 외국인 근로자와 내국인 요양보호사가 경쟁이 아니라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역사회 정착 문제 역시 중요한 검증 과제이다. 수도권은 지원기 관과 의료·교통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지방과 농어촌은 돌봄 수요가 크면서도 정착지원 체계가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시범사업은 지역 유형별 위험요인과 필요한 지원체계를 비교·분석해야 한다. 주거 지원과 생활 상담, 지역사회 수용성, 체류 안정성 등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장기 정착은 어려워질 수 있다. 외국인 요양보호사는 기관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하는 주민 이기 때문이다.

비용 구조 또한 반드시 점검되어야 한다. 한국어 교육과 현장실습, 멘토링, 통역, 권리상담, 정착지원에는 모두 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용 부담 구조가 명확하지 않으면 대학과 요양기관, 외국인 유학생 개인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따라서 시범사업은 실제 비용 구조를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장기요양보험 수가나 정부 예산, 지방자치단체 지원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 것인지 검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제도 확대 여부는 인력 양성 규모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재정 구조의 현실성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성과지표 역시 단순한 양적 지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입학생 수와 자격취득률, 취업률만으로는 서비스 질과 노동권, 사회적 수용성 문제를 확인하기 어렵다. 교육 성과와 현장 수행능력, 이용자 안전, 가족 신뢰, 노동권 보호 수준, 기관 관리역량, 내국인 요양보호사와의 협업, 지역 정착 가능성, 재정 지속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는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를 단순 인력 공급 정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돌봄체계 구축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시범사업의 평가 방식도 중요하다. 평가가 정부 내부의 행정 결과 보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외국인 요양보호사 당사자, 내국인 요양보호사, 기관 관리자, 이용자와 가족,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어야 한다. 특히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어떤 교육을 어렵게 느꼈는지, 현장에서 어떤 의사소통 문제가 반복되었는지, 권리구제 절차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경험은 제도 개선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시범사업은 실패를 숨기는 과정이 아니라 위험을 발견하고 수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시범사업의 핵심은 규모 확대가 아니라 구조 검증에 있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을 양성했는가가 아니라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존중받는 노동자로 일할 수 있었는가, 이용자와 가족이 신뢰할 수 있는 돌봄을 경험했는가,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부담이 과도하게 증가하지 않 았는가를 확인하는 데 있다. 또한 권리침해 발생 시 제도가 실제로 작동했는지, 지역사회 정착과 재정 구조가 지속 가능한지도 함께 검증되어야 한다.

따라서 시범사업은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의 핵심 단계이다. 교육의 질과 서비스 질, 노동권과 사회적 수용성, 배치 기준과 기관 관리, 지역 정착과 재정 구조까지 충분히 점검해야만 제도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는 속도가 아니라 신뢰를 기준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 신뢰는 치밀하게 설계되고 평가된 시범사업에서 시작된다.

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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