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낱말은 문장 속에서 뜻이 달라진다
낱말에는 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뜻이 있지만 실제 글에서는 문맥에 맞는 의미가 선택된다. 같은 낱말이라도 어떤 대상과 연결되는지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앞뒤 문장은 낱말의 의미를 좁혀 주거나 낯선 낱말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말도 특정한 분야에서는 더 좁고 정확한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낱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뜻을 바로 적용하기보다 문장 전체를 먼저 살펴야 한다. 낱말을 문장과 글의 흐름 속에서 읽는 습관을 들이면 글쓴이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1)사전의 뜻과 문장 속 뜻
사전은 낱말이 가질 수 있는 여러 뜻을 보여 주지만, 실제 문장에서 어떤 뜻이 사용되었는지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하나의 낱말에 여러 뜻이 있다면 문장에서는 그중 문맥에 맞는 뜻이 선택된다. 따라서 사전에서 가장 먼저 제시된 뜻을 그대로 적용하면 문장의 의미가 어색해질 수 있다. 낱말이 어떤 대상과 연결되어 있는지, 주변에 어떤 표현이 놓여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사전은 가능한 의미의 범위를 알려 주고 문맥은 그 가운데 알맞은 뜻을 선택하게 한다. 낱말의 뜻을 안다는 것은 사전의 풀이를 기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 맞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민서는 토요일 오후에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가방은 금세 무거워졌다. 책을 빌린 뒤 열람실에 들어가자 안쪽 자리는 분위기가 무거워 보였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말없이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민서는 자신도 공부해야 한다는 책임이 무겁게 느껴졌다. 잠시 뒤 창가에 자리를 잡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민서는 같은 ‘무겁다’라는 말도 무엇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뜻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제시문에는 ‘무겁다’와 ‘가볍다’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먼저 ‘가방은 금세 무거워졌다’에서 ‘무겁다’는 가방의 실제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뜻이다. 반면 ‘분위기가 무거워 보였다’에서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말하거나 행동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낸다. ‘책임이 무겁게 느껴졌다’에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중요하고 부담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마지막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도 마음의 실제 무게가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긴장이나 부담이 줄어 편안해졌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같은 낱말이라도 어떤 대상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문장 속 의미를 구별할 수 있다.
만약 ‘무겁다’를 모두 물체의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뜻으로만 이해한다면 제시문의 일부 문장은 자연스럽게 해석되지 않는다. 이때에는 사전에 실린 여러 뜻 가운데 문장에 맞는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 특히 형용사나 동사는 사람의 감정, 상황, 관계와 연결되면서 비유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높다’도 산의 높이, 가격의 수준, 관심의 정도를 나타낼 때 서로 다른 뜻을 가진다. 따라서 사전의 뜻을 확인한 뒤에는 그 풀이가 현재 문장에 실제로 들어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앞뒤 표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뜻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낱말을 문장 속에서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2)앞뒤 문장에서 뜻을 찾는 방법
글을 읽다가 낯선 낱말을 만났다고 해서 곧바로 읽기를 멈출 필요는 없다. 글쓴이는 낯선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앞뒤 문장에 여러 단서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말을 쉬운 표현으로 다시 설명하거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기도 한다. 서로 반대되는 말을 나란히 놓아 의미를 짐작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낱말 때문에 문장의 의미가 막힐 때에는 해당 낱말만 바라보지 말고 주변 문장까지 읽어야 한다. 문맥의 단서를 활용하면 사전을 찾기 전에도 낱말의 뜻을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온라인 쇼핑 이용자가 빠르게 늘었지만 올해에는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이용자 수는 여전히 늘고 있으나 새로 증가한 사람의 수는 지난해보다 적었다. 특히 상반기에는 매달 큰 폭으로 늘던 이용자 수가 하반기부터 조금씩만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시장이 축소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용자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속도가 전보다 느려졌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흐름과 달리 이용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전체적인 증가세는 약해졌지만 모든 지역에서 같은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둔화’라는 낱말의 뜻을 모른다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을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 문장은 이용자 수가 계속 늘고 있지만 새로 증가한 사람의 수는 지난해보다 적었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 문장에서도 이용자가 큰 폭으로 늘던 상태에서 조금씩만 증가하는 상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이용자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증가하는 속도가 느려졌다고 다시 풀어 준다. 이러한 설명을 종합하면 ‘둔화’는 어떤 움직임이나 변화의 속도가 이전보다 느려지는 상태를 뜻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현상이 완전히 멈추거나 반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뜻과는 다르다. 앞뒤 문장이 낯선 낱말의 의미를 더욱 쉬운 표현으로 설명해 준 것이다.
문맥에서 뜻을 찾을 때에는 어떤 단서가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에서는 ‘여전히 늘고 있으나’와 ‘늘어나는 속도가 전보다 느려졌다’는 표현이 ‘둔화’의 뜻을 설명한다. 때로는 ‘즉’, ‘다시 말해’, ‘예를 들면’과 같은 표현이 뜻을 알려 주는 신호가 된다. ‘반면’, ‘그러나’, ‘이와 달리’처럼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연결하는 말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한 문장만으로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면 앞뒤 문장이나 문단 전체까지 읽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 다만 문맥에서 추론한 뜻이 확실하지 않거나 정확한 정의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전이나 전문 자료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3)같은 낱말이 여러 뜻으로 쓰이는 경우
하나의 낱말이 둘 이상의 뜻을 가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같은 낱말이라도 어떤 분야에서 사용되는지, 어떤 말과 함께 쓰이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여러 뜻을 가진 낱말을 잘못 이해하면 해당 문장뿐 아니라 글 전체의 내용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낱말은 익숙한 뜻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잘못 해석하기 쉽다. 따라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미를 바로 적용하기보다 낱말 주변의 표현을 살펴야 한다. 여러 의미 가운데 문장에 알맞은 뜻을 선택하게 하는 기준은 결국 문맥이다.
“지후는 대학 입학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 누리집에 접속했다. 지원서를 제출한 뒤에는 서류 확인과 면접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안내가 나와 있었다. 지후는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를 빠뜨리지 않도록 일정을 정리했다. 입학 후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도 궁금해 교육과정을 함께 찾아보았다. 교육과정에는 전공에 필요한 기초 과목과 학년별 선택 과목이 정리되어 있었다. 지후는 입학에 필요한 절차뿐 아니라 대학에서 배우게 될 내용까지 살펴본 뒤 지원을 결정했다. 같은 ‘과정’이라는 말이 안내문의 위치와 함께 쓰인 표현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시문에서 ‘과정’은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대학 입학 과정’과 ‘서류 확인과 면접 과정’은 입학을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나 단계를 가리킨다.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를 빠뜨리지 않도록’에서는 지원을 준비하는 동안의 흐름을 뜻한다. 반면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이 일정한 체계로 구성된 것을 의미한다. 세 표현에는 모두 일이 일정한 순서나 체계에 따라 진행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리키는 대상은 입학 절차, 준비 기간, 교육 내용으로 서로 다르다. 낱말 앞뒤에 놓인 ‘입학’, ‘준비’, ‘교육’이라는 표현이 각각의 의미를 구별하게 해 준다.
여러 뜻을 가진 낱말을 읽을 때에는 그 낱말과 자주 결합하는 표현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평가’도 ‘성취도를 평가하다’에서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수준을 판단하는 행위를 뜻한다. ‘좋은 평가를 받다’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내린 의견이나 판단을 가리킨다. ‘정책 효과를 평가하다’에서는 자료와 기준을 바탕으로 정책의 결과를 살펴보는 의미가 강하다. 이처럼 낱말의 기본적인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맥에 따라 강조되는 부분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같은 낱말이 반복되더라도 앞에서 사용된 뜻이 뒤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낱말이 어떤 대상과 연결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문장마다 다시 확인해야 한다.
4)익숙한 말도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
어려운 낱말은 뜻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비교적 조심해서 읽게 된다. 반면 익숙한 낱말은 이미 뜻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별다른 확인 없이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뜻과 법률, 행정, 교육, 과학 등의 분야에서 사용하는 뜻은 다를 수 있다. 전문적인 글에서는 평소의 말이 더 좁고 정확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익숙한 뜻만을 적용하면 글에 없는 감정이나 판단을 덧붙이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쉬워 보이는 낱말일수록 현재의 문맥에서도 자신이 아는 뜻으로 사용되었는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학교는 체험학습에 참여한 시간을 수업 시간으로 인정한다고 안내했다. 학생들은 체험학습 보고서와 보호자 확인서를 정해진 날짜까지 제출해야 했다. 서류를 제출했다고 해서 모든 체험학습이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가 정한 기준을 충족하고 학습 활동이 확인된 경우에만 출석으로 처리되었다. 한 학생은 자신이 열심히 참여한 사실을 선생님이 좋게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내문에서 사용된 ‘인정’은 학생의 노력이나 가치를 칭찬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활동을 수업과 출석으로 처리한다는 행정적인 의미였다.”
일상에서 ‘인정하다’는 다른 사람의 노력이나 능력,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그래서 제시문의 학생은 선생님이 자신의 노력을 좋게 평가해 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안내문에는 보고서 제출, 학교의 기준, 출석 처리와 같은 표현이 함께 나온다. 이러한 표현을 보면 여기에서 ‘인정’은 칭찬이나 긍정적인 평가를 뜻하지 않는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활동을 공식적으로 수업과 출석에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익숙한 낱말에 평소의 의미를 그대로 적용하면 서류만 제출해도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낱말이 사용된 글의 분야와 주변 표현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험’이라는 말도 사용되는 분야에 따라 의미의 범위가 달라진다. ‘여행 경험’은 자신이 여행을 직접 해 본 일을 주로 가리킨다. 반면 ‘사용자 경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동안 접하게 되는 화면, 기능, 절차와 그 과정에서 느끼는 편리함이나 불편함까지 포함한다. 이를 단순히 사용자가 직접 겪은 한 가지 사건으로만 이해하면 전문적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법률이나 행정 문서에서 사용하는 ‘처분’, ‘신청’, ‘승인’과 같은 말도 일상적인 느낌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익숙한 낱말을 만났을 때에는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는가’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뜻이 이 문장과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가’까지 확인해야 정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