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 로드맵
6. 한국형 모델의 핵심: 충원·품질·권리·수용성·재정의 균형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의 핵심은 어느 한 요소만을 극대화하는 데 있지 않다. 외국인 요양보호사를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 서비스 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이용자와 가족의 신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장기요양보험 재정과 노동시장 안정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형 모델은 충원·품질·권리·수용성·재정의 균형을 함께 설계하는 통합적 제도 모델이어야 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논의가 본격화된 직접적 배경에는 돌봄 인력 부족 문제가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장기요양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낮은 처우와 높은 이직률, 제한적인 인력 양성 구조로 인해 내국인 요양보호사만으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이희승 등, 2023; 오경림·이삼식, 2025). 이에 따라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은 단순한 보조 정책이 아니라 돌봄체계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된 핵심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부족이 곧바로 대규모 충원 중심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교육과 언어역량, 현장실습, 노동권 보호, 정착지원 없이 단기간에 외국인 인력만 확대할 경우 서비스 질 저하와 현장 갈등, 노동권 침해와 조기 이탈, 사회적 불신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탈리아와 대만은 외국인 돌봄인력을 대규모로 활용하며 돌봄 공백 완화에는 일정한 성과를 보였지만, 공적 감독과 권리보장 체계가 충분히 결합되지 못하면서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서비스 질 관리의 취약성이 반복되었다. 한국형 제도는 이러한 한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단순한 인력 확대가 아니라 교육과 숙련, 권리보장과 서비스 질, 사회적 수용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첫 번째 균형축은 충원과 품질의 균형이다.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은 인력난 완화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그 전제는 서비스 질 유지에 있어야 한다. 돌봄노동은 단순노동이 아니라 신체지원과 정서지원, 건강 상태 관찰, 치매 대응, 가족 응대, 기록과 보고, 응급상황 대응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노동이다. 따라서 일반 한국어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직무 한국어와 치매 의사소통, 가족 응대 방식, 기록체계에 대한 이해가 함께 필요하다. 충원 정책은 자격·언어·교육·현장실습·멘토링을 결합한 품질관리 체계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대학 시범사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제도는 외국인 유학생을 단기 노동력으로 즉시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위과정과 한국어 교육, 요양보호사 자격취득, 취업 연계를 통해 교육 기반의 제도화 경로를 만들려는 시도이다. 다만 양성 규모 확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현장에 맞는 교육과정이 운영되는지, 현장실습과 취업 이후 멘토링이 안정적으로 연결되는지, 장기근속과 지역사회 정착이 가능한지를 검증하는 일이다. 교육 기반의 도입은 바람직한 출발점이지만, 교육이 현장 수행능력과 서비스 질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제도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충원과 품질의 균형은 단계적 자격체계로 구체화될 수 있다. 입문 단계에서는 기본 신체지원과 업무 범위 이해를 중심으로 하고, 이후 기록·보고와 치매 대응, 가족 응대, 중증돌봄과 응급상황 대응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충분한 역량 없이 위험한 업무에 배치되는 문제를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숙련된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멘토나 다문화 돌봄 코디네이터와 같은 전문 역할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할 수 있다. 단계적 자격체계는 배제의 장벽이 아니라 숙련을 축적하는 사다리로 설계되어야 한다.
두 번째 균형축은 품질과 권리의 균형이다. 서비스 질은 노동자의 권리와 분리될 수 없다. 요양보호사가 적정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충분히 쉬지 못하며 차별과 폭언에 노출되는 환경에서는 좋은 돌봄이 지속되기 어렵다. 특히 외국인 요양보호사는 언어 장벽과 체류 불안, 정보 부족으로 인해 권리침해에 더 취약할 수 있다. 따라서 권리보장은 단순한 윤리적 선언이 아니라 서비스 질 유지의 필수 조건이다. 좋은 돌봄은 좋은 노동조건 위에서 가능하다.
권리보장의 핵심은 동등한 기본 노동기준이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돌봄업무를 수행한다면 임금과 휴게, 노동조건 역시 국적이 아니라 자격과 경력, 숙련 수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적용하면 외국인 요양보호사는 저비용 대체 인력으로 고착되고,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처우와 직업적 지위 역시 하향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표준근로계약과 다국어 권리 안내, 근로시간과 휴게 관리, 산업안전교육, 익명 상담과 권리구제 체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재가 돌봄은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정기 점검과 상담 체계가 필수적이다.
세 번째 균형축은 권리와 사회적 수용성의 균형이다. 외국인 요양보호사 제도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사회적 신뢰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용자와 가족은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부모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지, 의사소통은 가능한지, 사고 발생 시 누가 책임지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내국인 요양보호사 역시 외국인 인력 도입이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 업무부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수용성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와 설명의 문제이다.
사회적 수용성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어떤 교육과 자격 과정을 거쳤고, 기관은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며, 갈등 발생 시 어떤 절차가 작동하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될 때 이용자와 가족의 불안은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외국인 인력의 현장 적응을 내국인 숙련자의 무급 멘토링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멘토 역할을 공식 업무로 인정하고 멘토 수당과 교육시간 인정, 업무량 조정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외국인 요양보호사 제도화가 내국인 노동자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숙련과 경력을 인정하는 계기로 작동 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수용성은 지역사회 정착과도 연결된다. 외국인 요양보호사는 기관 안에서만 존재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하는 주민이기도 하다. 주거가 불안정하고 생활정보가 부족하며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면 일터의 안정성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거 지원과 생활정보 제공, 지역 한국어 교육, 정신건강 상담과 노동권 상담, 커뮤니티 연결은 단순 복지 차원이 아니라 장기근속과 숙련 축적을 위한 핵심 기반이다.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이용자와의 돌봄관계도 안정될 수 있다.
네 번째 균형축은 수용성과 재정의 균형이다. 사회적 신뢰를 형성 하려면 교육과 멘토링, 통역, 권리보장, 정착지원과 같은 제도 운영 비용이 필요하다. 좋은 돌봄은 비용 없이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을 단순 비용 절감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교육비와 현장실습비, 멘토링 비용, 권리상담과 정착지원 비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결국 외국인 노동자와 내국인 멘토, 가족과 기관에 비공식적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 안정성은 비용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비용을 제도 안에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장기요양보험 수가 체계는 중요한 조정 장치가 된다. 단순히 외국인 요양보호사를 많이 채용한 기관이 아니라, 교육과 멘토링, 권리보장, 가족 안내, 장기근속과 지역사회 정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기관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외국인 요양보호사의 임금과 권리를 낮추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비용 절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높은 이직률과 재교육 비용, 노동분쟁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권리보장은 재정과 분리된 이상이 아니라 수가와 보험 재정 구조 속에서 함께 설계되어야 하는 제도 기준이다.
독일의 돌봄 전용 최저임금 사례 역시 이러한 균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독일은 돌봄 분야의 임금 기준을 별도로 설정했지만, 자격 인정의 복잡성과 조직 내 차별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는 임금 기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자격 인정과 언어 지원, 권 리구제와 공적 감독이 함께 작동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형 모델 역시 임금 기준, 자격체계, 노동권 보호, 서비스 품질관리, 지역사회 정착지원이 함께 맞물릴 때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다섯 번째 균형축은 제도 정합성의 균형이다.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는 정책수단 간 정합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한다. 보건복지부의 장기요양정책과 법무부의 체류정책, 고용노동부의 노동정책, 지자체의 정착지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가와 평가체계, 대학의 교육과정이 함께 연결될 때 제도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어느 한 영역이 빠지면 제도는 현장에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교육은 되어 있지만 체류가 불안정하거나, 체류는 가능하지만 권리구제가 어렵거나, 권리 기준은 있으나 수가와 재정 구조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 차원의 범부처 협력 거버넌스와 지역 단위 실행협 의체가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자격과 체류, 노동권과 재정지원의 기본 원칙을 마련해야 하고, 지자체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학과 요양기관은 지역 현장에서 이를 실행해야 한다. 시범사업 역시 단순 확대 절차가 아니라 제도의 위험과 가능성을 학습하는 과정으로 활용되어야한다. 제도는 한 번 설계하면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을 반영하며 계속 조정되어야 한다.
종합하면 한국형 모델은 다섯 가지 원칙 위에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충원은 필요하지만 값싼 대체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품질은 자격증만이 아니라 현장실습과 멘토링, 보수교육을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 셋째, 권리보장은 서비스 질과 장기근속의 전제이다. 넷째, 수용성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과이다. 다섯째, 재정 안정성은 비용 축소가 아니라 비용 구조의 정합성을 통해 확보되어야 한다. 이 다섯 요소는 서로 분리된 목표가 아니라 순환적으로 연결된 구조이다.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의 핵심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균형의 제도화에 있다. 충원은 품질 기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품질은 권리보장 위에서 유지되어야 하며, 권리는 재정 구조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수용성은 투명한 정보와 책임 구조를 통해 형성되어야 하고, 재정은 돌봄의 공공성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결국 외국인 요양보호사 제도화는 단순한 인력 확대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초고령사회에서 한국 사회가 돌봄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며, 돌봄노동을 어떤 가치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임시적 대체 인력으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권리와 숙련을 가진 공적 돌봄체계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한국 돌봄체계의 미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이제 논의의 초점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도입할 것인가” 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임 구조 속에서 제도화할 것인가”이다. 한국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인력 수급 대책이 아니라, 이용자의 존엄과 노동자의 권리, 가족의 신뢰와 지역사회의 수용성,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돌봄의 제도적 기반이다. 그 기반이 마련될 때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한국 돌봄체계의 주변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돌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