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돌봄사회와 사회서비스 체계
4. 돌봄경제와 돌봄노동
돌봄 경제는 사람의 생존과 발달,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유급·무급 돌봄 활동과 이를 운영하는 제도와 자원의 흐름을 포함한다. 돌봄 노동은 신체적인 업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파악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감정과 위험을 관리하는 복합적인 노동이다. 이 노동은 모든 경제활동과 사회의 일상이 지속되는 기반이지만, 가족의 의무나 여성의 타고난 성향으로 여겨져 경제적·사회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왔다. 돌봄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낮은 보상과 높은 노동 강도가 계속되면 인력 부족과 서비스의 질 저하가 반복될 수 있으므로, 유급·무급 노동과 성별 분업, 감정 노동, 노동 강도, 인력 정책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살펴야 한다.
1) 돌봄경제의 개념
돌봄 경제는 아동, 장애인, 환자, 노인, 일상생활에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직접 돌보는 활동과 식사, 청소, 세탁, 생활 환경 관리 등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간접적인 활동을 포함한다. 가정의 무급 돌봄, 공공·비영리·민간기관의 유급 서비스, 이를 지원하는 사회보험과 재정 지출도 모두 돌봄 경제를 구성한다. 보육, 교육, 보건의료, 장기요양, 장애인 지원, 가사 서비스, 사회복지가 서로 연결되므로 돌봄 경제는 하나의 산업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 성과는 서비스의 가격뿐 아니라 건강, 능력, 관계, 안전, 노동시장 참여,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돌봄을 경제 분석에 포함하면 무급·유급 노동의 관계와 가구·시장·지역사회·국가 사이의 비용과 책임 분담을 파악할 수 있다(ILO, 2018). 돌봄 경제는 생산 경제와 분리된 주변 영역이 아니라 노동자가 일하고 다음 세대가 성장하며, 사람들이 질병과 노화 속에서도 생활을 이어가도록 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기업과 시장은 돌봄을 통해 유지되는 노동력에 의존하지만,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가정과 공공부문이 부담한다. 돌봄에 대한 공공 투자는 이용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의 시간 부족을 줄이며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 수만 늘리고 임금과 전문성, 안전을 개선하지 않으면 저임금 노동시장만 확대될 수 있으므로, 돌봄 경제 정책은 보편적인 서비스 이용과 돌봄 노동자의 좋은 일자리, 무급 돌봄자의 권리를 함께 보장해야 한다.
2) 유급 돌봄노동과 무급 돌봄노동
무급 돌봄 노동은 가족이나 공동체 구성원이 보수 없이 수행하는 양육, 간병, 가사, 정서 지원, 일정 관리 등의 활동이다. 유급 돌봄 노동은 고용계약이나 서비스 계약에 따라 보수를 받으며 보육교사, 간호 인력,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가사 노동자 등이 수행한다. 두 형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공공서비스가 부족하면 가족의 무급 노동이 늘고, 공식 서비스가 확대되면 일부 활동이 유급 노동으로 옮겨 간다. 무급 돌봄이 경제 통계와 정책에서 제외되면 가족이 부담하는 시간과 기회비용이 적게 평가되고 유급 돌봄의 전문성과 사회적 가치도 낮게 인식되기 쉽다. 경제가 개인의 이익과 시장 거래만으로 유지된다는 관점은 사랑, 책임, 의무, 상호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돌봄의 기여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Folbre, 2001). 보수를 받는지는 돌봄의 가치와 난이도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며, 가족이 수행하는 의료적 처치나 치매 돌봄도 높은 지식과 지속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무급 돌봄자에게는 휴식, 교육, 건강 보호, 소득 지원, 사회보험의 권리를 제공하여 빈곤과 경력 단절을 줄여야 하며, 유급 돌봄자에게는 근로 시간, 임금, 휴식, 산업 안전, 교육, 경력 개발 등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가족 돌봄에 대한 현금 급여는 선택권을 넓힐 수 있지만 가족 안의 성별 분업과 장기적인 소득 격차를 굳힐 수 있으므로, 누구도 돌봄 역할을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며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돌봄노동의 여성화와 저평가
돌봄 노동의 여성화는 가정의 무급 돌봄과 보육·간호·요양·가사 등 유급 돌봄 직종에 여성이 높은 비율로 집중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성별 분업은 돌봄을 여성의 자연스러운 능력이나 사랑의 표현으로 여겨 필요한 전문성, 책임, 노동 시간을 드러나지 않게 만들었다. 유급 돌봄 직종도 여성에게 익숙한 역할이라는 이유로 업무의 난이도가 낮게 평가되고 낮은 임금과제한된 승진 기회가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돌봄 직종의 임금이 교육 수준, 경력, 다른 직무 특성을 고려한 뒤에도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는 돌봄의 사회적 가치와 시장의 보상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준다(England et al., 2002). 따라서 여성화는 단순히 여성 종사자가 많다는 사실이 아니라 가족과 노동시장의 성별 권력관계가 돌봄의 분담과 보상에 반영되는 구조적 문제이다. 돌봄의 저평가는 성별뿐 아니라 계층, 인종·민족, 이주 지위, 고용 형태와 결합하여 취약한 노동자에게 열악한 업무를 집중시킬 수 있다. 전문직과 보조직 사이의 위계는 직접적인 신체 돌봄과 가사, 관계 형성에 필요한 노동을 가치가 낮은 일로 여기게 한다. 남성의 돌봄 직종 참여도 필요하지만, 여성 다수 직종의 임금과 지위를 개선하지 않은 채 성별 구성만 바꾸어서는 저평가 구조를 해결하기 어렵다. 직무 평가에는 신체적 부담, 정서적 요구, 위험 관리, 의사소통, 관계 형성, 이용자 권리 보호에 필요한 능력을 반영하고, 성평등 임금과 고용 안정, 자격·경력 체계, 공공 재정, 노동자의 집단적인 참여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
4) 돌봄노동자의 감정노동과 노동강도
감정 노동은 노동자가 조직과 업무에서 요구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상대방의 정서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을 의미한다 (Hochschild, 1983). 돌봄 노동자는 이용자의 불안, 분노, 슬픔, 혼란에 대응하며 안정감과 신뢰를 제공해야 하므로 감정 조절과 관계 유지가 업무의 핵심이 된다. 이용자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전문적인 판단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사망·학대·위기와 가족 갈등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감정 노동은 돌봄의 질을 결정하는 전문적인 능력이지만 친절이나 헌신으로만 여겨지면 업무량과 보상, 교육에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자신의 실제 감정과 조직이 요구하는 표현의 차이가 쌓이면 정서적 소진, 냉소적인 태도, 이용자와의 거리 두기, 이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돌봄 노동의 강도는 사람을 들어 올리거나 이동시키는 신체적 부담, 시간 압박, 교대근무,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 기록 업무가 결합하여 높아진다. 인력이 부족하면 한 명의 종사자가 더 많은 이용자를 짧은 시간에 지원해야 하므로 안전과 관계 형성을 함께 유지하기 어렵다. 이용자나 가족의 폭력, 성희롱, 언어적 괴롭힘을 서비스직이라는 이유로 참도록 요구하는 것은 산업 안전과 인권을 침해한다. 국제적으로도 장시간 노동, 안전과 건강의 위험, 폭력과 괴롭힘, 인력과 전문성 부족이 좋은 돌봄 일자리를 방해하는 문제로 지적되므로(ILO, 2024), 적정 인력, 휴게 시간, 안전 절차, 지도·감독, 조직 차원의 심리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5) 돌봄 인력 부족과 처우 문제
돌봄 인력 부족은 서비스 수요에 비해 종사자의 수와 전문성, 근무 가능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 지역사회 생활 지원의 확대는 보건·돌봄 인력의 수요를 계속 늘리지만,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은 신규 인력의 진입과 숙련된 종사자의 장기 근무를 어렵게 한다. 장기요양 분야에서는 낮은 보수뿐 아니라 부족한 교육·훈련과 불투명한 경력 전망도 직업의 매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적된다(OECD, 2023a). 인력 부족은 남은 종사자의 업무량과 이직을 늘리고 담당자 교체와 서비스 시간 축소를 초래하여 이용자의 안전과 관계의 연속성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인력 정책은 단순히 채용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인력의 유입, 교육, 배치, 유지, 경력 개발을 연결한 장기적인 계획으로 마련해야 한다. 처우 개선에는 임금 인상뿐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근무 시간, 유급 휴가와 휴식, 산업 안전, 심리 지원, 교육 시간, 승진이 가능한 경력 체계가 포함된다. 서비스 가격이나 공적 수가에 적절한 인건비와 운영비가 반영되지 않으면 기관에 처우 개선을 요구해도 실제 임금과 인력 배치를 개선하기 어렵다. 지방·농어촌과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 돌봄 분야에는 지역 수당, 주거·이동 지원, 추가 교육, 전문 인력 공유 등 차별화된 대책이 필요하다. 이주 돌봄 노동자를 활용할 때에도 체류 자격과 고용주에 대한 지나친 의존, 임금 차별, 권리 구제의 어려움을 방지하고 동등한 노동권을 보장하여 종사자를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닌 서비스의 질과 이용자의 권리를 실현하는 핵심 인력으로 대우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