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돌봄사회와 사회서비스 체계
3. 복지국가 변화와 돌봄서비스 확대
복지국가는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 상실과 빈곤을 줄이는 제도로 출발했지만, 가족과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라 생활 지원 서비스까지 책임 영역을 넓혀 왔다. 연금, 실업 급여, 공공부조와 같은 현금 급여는 소득을 보전할 수 있지만 아동 양육, 장애, 질병, 노화로 발생하는 일상적인 돌봄을 직접 제공하지는 못한다.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돌봄의 필요와 서비스 이용 가능성이 고용, 성평등, 건강, 교육, 사회 참여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사회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돌봄 서비스의 확대는 복지국가가 사후적인 소득 보장에서 예방, 능력 향상, 사회 참여, 일상생활의 유지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므로, 소득 보장과 사회서비스의 관계, 새로운 사회적 위험, 돌봄 서비스 확대의 사회적 의미를 함께 살펴야 한다.
1) 소득보장 중심 복지국가
소득 보장 중심의 복지국가는 실업, 질병, 산업재해, 노령, 가장의 사망처럼 임금 소득을 중단시키는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여 발전하였다. 사회보험은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고 위험을 함께 분담하도록 하며, 공공부조는 소득과 자산이 부족한 사람에게 최저 생활을 보장한다. 전후 복지국가의 주요 제도는 안정적으로 고용된 남성 생계 부양자와 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배우자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기본적인 형태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인 복지국가 분석도 개인이 국가와 시장을 통해 임금 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정도와 소득 이전이 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Esping-Andersen, 1990). 이 체계는 산업사회의 빈곤과 소득 불안을 줄이는 데 기여했지만, 가족 안의 무급 돌봄과 서비스 필요를 독립적인 사회적 위험으로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현금 급여는 이용자가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하지만, 지역에 서비스가 없거나 돌봄 비용이 급여 수준보다 높으면 실제 필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가족이 돌봄을 제공한다는 전제에서 소득만 지원하면 누가 돌봄을 맡는지와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 중단과 건강 악화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사회보험이 정규직과 지속적인 보험료 납부를 중심으로 설계되면 무급 돌봄으로 경력이 단절된 사람과 불안정 노동자는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따라서 소득 보장 제도는 돌봄 기간의 소득 상실과 연금 가입의 공백, 추가 생활비를 보완하고 사회서비스와 연계해야 하며,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이용할 권리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
2) 사회서비스 중심 복지국가
사회서비스 중심 복지국가는 소득 지원과 함께 보육, 장기요양, 장애인 지원, 보건의료, 재활, 고용 지원, 지역사회 서비스를 핵심적인 복지 수단으로 활용한다. 사회서비스는 개인의 생활 환경에서 직접 제공되므로 이용자의 기능과 관계, 참여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며 현금 급여보다 사람 간의 관계와 노동에 더 많이 의존한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가족이 돌봄을 제공할 여건이 약화되면서 정기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동, 노인, 장애인을 지원하는 공식 서비스는 복지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영역이 되었다(Anttonen, 2005). 서비스 제공에는 재정뿐 아니라 시설과 인력, 전문성, 지역별 공급, 정보 체계, 품질 관리가 필요하므로 국가의 역할도 급여 지급에서 서비스 공급 체계의 운영으로 확대된다. 사회서비스 중심의 전환은 시민의 권리를 소득 보장에 한정하지 않고 돌봄과 교육, 사회 참여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원을 이용할 권리로 넓힌다.
사회서비스는 이용자의 현재 어려움을 줄일 뿐 아니라 아동의 발달, 성인의 고용 유지, 장애인의 자립, 노인의 기능 유지를 지원하는 예방적 투자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투자 관점은 복지정책이 개인의 능력을 높이고 생애 과정과 노동시장 변화를 지원하며,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기능을 결합해야 한다고 본다(Hemerijck, 2023). 다만 서비스의 경제적 수익이나 취업 효과만 강조하면 노동시장 성과로 측정하기 어려운 존엄성, 관계, 안전, 삶의 질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을 수 있다. 사회서비스의 확대가 저비용 민간 공급과 불안정 노동에 의존하면 이용자의 권리와 종사자의 노동 조건이 함께 약화될 수 있으므로, 사회투자의 효과와 사회적 권리의 보장을 조화시키면서 서비스 공급에 대한 공적 책임을 유지해야 한다.
3)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돌봄 수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후기 산업사회의 가족 구조와 노동시장 변화로 기존의 연금, 실업보험, 공공부조만으로 충분히 보호하기 어려워진 생활상의 위험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위험에는 일과 돌봄을 함께하기 어려운 상황, 한부모 가족의 소득과 시간 부족, 불안정 고용, 장기 실업, 저숙련 노동자의 취업 어려움, 장기적인 돌봄 필요가 포함된다(Bonoli, 2005). 이러한 위험은 한 번의 소득 상실로 끝나지 않고 교육 기회, 경력, 건강, 가족관계, 노후 소득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돌봄 서비스가 부족하면 가족 구성원이 근로 시간을 줄이거나 취업을 포기해야 하므로 돌봄의 위험은 노동시장의 위험과 직접 연결된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개인의 적응 능력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생활 환경이 변화한 필요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할 때 커진다. 아동 돌봄의 부족은 부모의 고용뿐 아니라 아동의 발달과 교육 격차에 영향을 미치며, 장기요양의 부족은 노인과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과 가족의 경제활동을 제한한다. 플랫폼 노동, 단시간 노동, 잦은 직장 이동이 증가하면 기존의 사업장 중심 휴가와 사회보험만으로 돌봄 시간과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가족 구조가 다양해지면서 배우자나 성인 자녀가 항상 돌봄을 제공할 것이라는 제도적 가정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복지국가는 생애 초기에 개인의 능력 발달을 지원하고 일과 가족생활의 변화를 도우며 보편적인 서비스를 확대해야 하고 (Esping-Andersen et al., 2002), 예방적 서비스와 소득 보장, 노동권을 결합하여 위험이 성별과 계층에 따라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돌봄서비스 확대의 의미
돌봄 서비스의 확대는 가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하던 생활 지원을 사회적 권리와 유급 노동의 영역으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용자는 가족의 유무나 경제력에 관계없이 필요한 지원을 이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가족 돌봄자는 돌봄과 고용, 자신의 생활을 조정할 선택권을 확보할 수 있다. 보육과 장기요양, 장애인 지원의 확대는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 책임을 줄이고 교육과 노동시장, 지역사회 참여에서 나타나는 성별 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 돌봄은 개인적 관계인 동시에 국가와 사회를 연결하는 정책적 가치이므로 서비스 확대의 효과는 공급량뿐 아니라 관계의 질과 책임의 분담까지 포함하여 평가해야 한다(Daly, 2002). 사회서비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부족한 부분만 보충하는 선별적 지원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생애 과정과 사회 참여를 돕는 보편적인 사회 기반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 확대가 곧바로 권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자격 기준, 본인 부담, 대기 시간, 지역별 공급, 정보 접근의 장벽이 남으면 이용 격차가 계속될 수 있다. 공급량을 빠르게 늘리기 위해 낮은 가격과 지나친 경쟁을 적용하면 짧은 서비스 시간, 잦은 인력 교체, 불안정 고용으로 서비스 관계와 연속성이 약화될 수 있다. 현금 급여나 이용권도 이용자의 선택을 넓힐 수 있지만 제공기관에 관한 정보와 대안, 품질 관리가 부족하면 선택에 따른 책임만 개인에게 떠넘겨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돌봄 서비스의 양적 확대에는 공공 기반 시설, 전문 인력 양성, 적절한 보상, 노동권, 이용자 참여, 효과적인 권리 구제가 함께 마련되어야하며, 이를 통해 돌봄을 받거나 제공한다는 이유로 누구도 빈곤과 소외, 존엄성의 훼손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