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020. 사회적 수용성은 태도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과다

제4장 사회적 수용성: 제도화의 보이지 않는 조건

5. 사회적 수용성은 태도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과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에서 사회적 수용성은 흔히 국민의 인식이나 문화적 개방성의 문제로 설명된다. 그러나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사회가 받아들이는가는 개인의 호감 이전에, 제도가 얼마나 신뢰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는가와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용자와 가족은 외국인이라는 이유 자체보다 충분한 돌봄 역량과 의사소통 능력, 응급상황 대응 능력, 책임 있는 관리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에 따라 불안을 느낀다. 내국인 요양보호사 역시 외국인 자체보다 낮은 임금과 약한 노동조건이 자신의 노동환경을 악화시킬 가능성에 우려를 가진다. 결국 사회적 수용성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신뢰성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홍보나 캠페인이 아니다. 이용자와 가족이 안심할 수 있는 품질관리 체계, 내국인 요양보호사가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노동 기준,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 지역사회 정착지원 체계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사회적 수용성은 제도 도입 이후에 덧붙이는 부가 요소가 아니라,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함께 구축되어야 하는 출발 조건이다. 돌봄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초기 설계에서 발생한 불신과 갈등은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자격과 교육은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는 핵심 장치가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어떤 기준을 통과했고 어떤 교육을 받았 는지가 명확해야 이용자와 가족은 이들을 단순한 낯선 외국인이 아니라 공식적인 돌봄인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돌봄 현장에서 필요한 노인 이해, 치매 돌봄, 감염관리, 응급상황 대응, 기록과 보고, 노동권 교육 등이 체계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자격과 교육 체계가 명확 할 수록 제도는 설명 가능성을 갖게 된다. 반대로 기준이 불분명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과 편견으로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신뢰는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개인적 성실성만이 아니라, 그들을 어떤 기준으로 양성하고 관리하는가에 의해 형성된다.

언어와 문화 지원 역시 사회적 수용성의 핵심 조건이다. 돌봄 현장 에서의 의사소통은 단순한 시험 한국어가 아니라 노인의 감정 표현, 치매 노인의 반복 언어, 가족의 요구, 기관의 기록과 보고 체계를 이해하는 능력과 연결된다. 따라서 직무 한국어, 치매 돌봄 의사소통, 가족 응대, 문화적 민감성 교육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이러한 적응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이용자와 가족, 내국인 요양보호사, 기관 역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가족은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와 업무 범위를 이해해야 하고, 기관은 다문화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사회적 수용성은 외국인의 일방적 적응이 아니라 상호 조정 능력 위에서 형성된다.

노동권 보장도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노동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장기근속이 어렵고, 높은 이직률은 서비스 연속성과 이용자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가 더 낮은 임금과 더 열악한 조건으로 고용될 경우 내국인 요양보호사는 자신의 노동조건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이 경우 외국인 노동자는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기준의 원칙이 분명해야 하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보호 기준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외국인만을 위한 보호가 아니라 돌봄노동 전체의 기준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다.

업무 범위와 책임 구조 역시 명확해야 한다. 이용자와 가족은 외국인 돌봄근로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은 요구해서는 안 되는지 알아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 또한 수행해야 할 업무와 거절할 수 있는 업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특히 재가 돌봄은 이용자의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업무 지시, 휴게시간, 가족의 요구, 차별, 안전 문제에 대해 누가 관리하고 개입할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기관이 단순히 인력을 배치한 뒤 문제를 개인 간 관계로 방치한다면 제도는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사회적 수용성은 책임 있는 기관 운영과 공적 관리체계 위에서 형성된다.

지역사회 정착지원도 제도 설계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일터 밖에서도 지역 안에서 살아가며 이동하고 관계를 맺는다. 지역사회에서 고립된 노동자는 장기근속하기 어렵고, 이는 돌봄관계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주거와 생활 안내, 상담, 한국어 교육, 지역사회 연결과 차별 예방은 단순 복지서비스가 아니라 서비스 안정성과 연결된 제도적 기반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역할에서 지자체의 중요성이 크다. 사회적 수용성은 중앙정부의 발표만으로 형성되지 않으며, 지역사회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적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수용성은 재정과도 연결된다. 교육과 통역, 멘토링, 상담, 권리구제, 정착지원에는 모두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비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관은 최소 비용 운영에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서비스 질과 신뢰는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도입 인원이나 비용 절감 효과만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인 근로자의 장기근속, 이용자와 가족의 신뢰, 내국인 요양보호사와의 협력, 노동권 침해 감소, 지역사회 정착 여부까지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 사회적 수용성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관리해야 하는 정책 성과이다.

이처럼 사회적 수용성을 제도 설계의 문제로 이해하면 정책의 질문도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받아들일 것인가”가 아니라,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이를 단순한 인력 부족 문제로 바라보면 정책은 빠른 충원과 비용 절감 중심으로 흐르기 쉽다. 반면 지속 가능한 돌봄체계 구축의 문제로 이해하면 자격과 교육, 노동권, 언어와 문화, 지역사회 정착, 재정 구조까지 함께 고려하게 된다. 사회적 수용성은 개인의 태도 이전에 제도의 품질과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한국은 장기요양보험이라는 공적 돌봄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가족 돌봄 문화 역시 여전히 강하다. 고령 이용자는 외국인과의 접촉 경험이 적을 수 있고, 가족은 부모 돌봄 문제에서 높은 수준의 신뢰를 요구한다. 내국인 요양보호사 역시 낮은 처우와 높은 노동강도 속에서 외국인 인력 도입에 대한 불안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단순히 체류 자격을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선발과 교육, 언어와 현장 적응, 노동권 보장과 가족 안내, 지역사회 정착지원, 기관 책임과 평가체계가 하나의 정책 흐름 안에서 연결되어야 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는 장기요양, 이민, 노동, 지역사회 정책이 교차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수용성의 핵심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있다. 이들을 단순한 저비용 대체 인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격과 전문성을 갖춘 공식 돌봄노동자이자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제도의 방향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공허 한 캠페인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경험할 때 태도를 바꾼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충분한 교육과 권리보장 속에서 일하고, 기관이 책임 있게 관리하며, 지역사회가 정착을 지원하고,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처우 역시 함께 개선되는 경험이 축적될 때 사회는 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수용성은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확인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제도 설계의 출발점이며,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다. 신뢰 가능한 제도가 만들어질 때 이용자와 가족은 안심할 수 있고, 내국인 요양보호사는 외국인 근로자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외국인 근로자는 지역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 수용성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가능한 제도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이다.

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표지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