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해외사례가 보여주는 네 가지 제도화 방식
1.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 돌봄 공백을 빠르게 메우는 방식
이탈리아, 대만, 미국은 외국인 돌봄노동자를 비교적 큰 규모로 활용해온 대표적 사례이다. 세 국가는 복지제도, 이민정책, 가족문화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외국인 돌봄노동자를 돌봄 인력 부족을 완화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공적 장기요양체계가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의 공백을 메우고, 가족 돌봄의 한계를 보완하며, 낮은 임금 기반의 직접 돌봄 노동시장을 유지하는 핵심 인력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들 사례는 동시에 저비용·대규모 충원 방식이 노동권 약화, 서비스 질 불안정, 돌봄노동의 저평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은 대체로 세 가지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첫째, 돌봄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지만 공공제도와 내국인 인력만으로 이를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다. 둘째, 가족은 여전히 돌봄의 중요한 책임 주체로 남아 있으며, 국가는 가족이 시장에서 돌봄 인력을 구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셋째, 외국인 돌봄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공적 돌봄체계의 공식 구성원이라기보다, 가족과 제도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완충 장치로 기능하기 쉽다.
이 모델의 장점은 분명하다. 돌봄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비교적 빠르게 돌봄 공백을 줄일 수 있다. 가족은 부모나 배우자를 집에서 돌볼 수 있는 선택지를 유지할 수 있고, 국가는 공공 장기요양시설을 단기간에 대규모로 확충하지 않고도 일정 부분 돌봄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특히 고령자가 시설이 아니라 익숙한 집에서 생활 하기를 원하는 경우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재가 돌봄의 현실적 기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구조적 위험을 동반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낮은 비용의 노동력으로만 활용될 경우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낮아지고, 서비스 질과 노동권 보호는 취약해질 수 있다.
이탈리아는 이러한 모델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바단테(badante)’라고 불리는 외국인 가정돌봄근로자가 고령자 돌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해 왔다. 이들은 주로 고령자의 가정에서 생활하거나 장시간 머물며 식사, 청소, 이동 지원, 말벗, 신체 돌봄과 일상생활 보조를 수행한다. 이탈리아의 특징은 공공 장기요양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이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 확 대되었다는 점이다(Di Santo & Ceruzzi, 2010; Seiffarth & Aureli, 2022). 국가는 돌봄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기보다, 가족이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해 돌봄 책임을 수행하는 구조를 형성해 온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바단테가 확산된 배경에는 가족 중심 복지문화와 현금급여 제도가 결합되어 있다. 가족은 국가로부터 일정한 급여나 수당을 지 급받고, 이를 활용해 가정 안에서 돌봄근로자를 고용한다. 이 방식은 고령자가 시설이 아닌 익숙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고, 가족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돌봄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는 서비스 질과 노동조건을 직접 관리하기보다 가족에게 고용과 관리 책임을 넘기게 된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외국인 가정돌봄은 공적 지원과 사적 고용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탈리아 모델의 한계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가족이 직접 고용하는 방식은 유연성을 제공하지만, 근로조건과 서비스 질을 공적으로 관리하기 어렵게 만든다. 돌봄이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돌봄 업무와 가사 업무가 혼합되기 쉽다. 특히 동거형 돌봄에서는 노동자가 사실상 하루 종일 대기 상태에 놓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Porumbescu, 2022; Panzaru & Gravina, 2024). 비공식 고용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공식 계약을 피하 거나 체류 자격 문제로 비공식 고용이 이루어질 경우, 임금 체불, 사회보험 미가입, 산재 보호 부재, 권리구제 접근성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탈리아 사례는 외국인 돌봄노동이 돌봄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했음에도, 공공적 관리와 노동권 보장이 충분히 결합되지 않으면 구조적 취약성이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 역시 외국인 가정돌봄근로자를 대규모로 활용해 온 대표 사례이다. 대만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시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를 가정 내 돌봄 영역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고령자나 장애인을 돌보며 장시간 또는 동거형 방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Wang & Liu, 2024; 勞動部, 2025). 대만 모델은 가족고용 중심 구조가 강하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유사하지만, 아시아적 가족주의와 국가의 이주노동 관리체계가 결합되어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대만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확대된 배경 역시 빠른 고령화와 가족 돌봄 부담 증가에 있다. 가족 규모 축소와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속에서 가족 내부에서 돌봄을 전담하기 어려워지자, 외국인 가정돌봄근로자는 부모 돌봄을 유지하면서도 생계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 입장에서도 공공 장기요양시설을 대규모로 확충하 기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돌봄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처럼 대만의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가족 돌봄의 공백과 국가 제도의 한계를 동시에 보완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대만의 경험 역시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의 위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가족고용 구조 안에 놓이면 노동시간, 휴식, 업무 범위가 쉽게 불분명해진다. 고령자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 밤낮 없이 돌봄 요구에 대응해야 하거나, 돌봄 외에 청소·요리·세탁과 같은 가사 업무까지 기대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언어와 체류 자격 문제 때문에 노동자가 업무 범위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를 심화시킨다(梁莉 芳, 2024; Wang & Liu, 2024). 결국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가족 돌봄 부담을 줄이는 핵심 인력이 되지만, 동시에 사적 공간 안에서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노출될 위험도 커진다.
대만 사례에서 주목할 또 다른 쟁점은 돌봄 부담이 국경을 넘어 이동 한다는 점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자신의 가족, 특히 자녀와 떨어져 타인의 가족을 돌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돌봄을 받는 국가의 가족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본국 가족에게 새로운 돌봄 공백을 만들 수 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경제적 송금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지만, 정서적 고립과 가족 분리, 정신적 부담도 함께 경험한다. 따라서 저비용 돌봄체계는 단순히 비용 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 부담을 국가 간·계층 간으로 이동시키는 구조와 연결된다.
미국은 이탈리아나 대만과는 다른 방식으로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의 특징을 보여준다. 미국은 전국 단위의 강한 공공 장기요양체계를 가진 국가는 아니며, 장기요양서비스는 메디케이드, 민간보험, 가족 부담, 시장 서비스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민노동자는 홈케어와 요양시설, 직접돌봄 부문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NCHWA, 2024; PHI, 2024). 특히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노동자가 직접돌봄 노동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모델의 핵심은 시장 중심 장기요양 구조와 이민노동의 결합이다. 돌봄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지만 돌봄노동의 임금은 낮고 노동강도는 높기 때문에 내국인 노동자만으로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때 이민노동자는 홈케어와 요양 부문으로 유입되어 고령자와 장애인의 일상생활 지원, 식사와 목욕, 이동과 정서 지원을 수행한다(Espinoza & Stepick, 2023; Chan & Takshi, 2025). 미국의 이민 돌봄노동자는 장기요양체계의 가장 기초적인 영역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례의 장점은 이민노동자가 돌봄 인력 기반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노동자는 다문화 이용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 모델은 동시에 낮은 임금과 높은 이직률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홈케어 노동자는 파 트타임과 불안정 시간제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 이동시간이 충분히 보상되지 않거나 건강보험·유급휴가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다. 요양시설 노동자 역시 높은 업무강도와 낮은 임금, 감정노동과 직무 스트레스 문제를 경험한다(Grabowski et al., 2023; PHI, 2024). 낮은 처우는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서비스 질과 연속성을 약화시키는 구조를 만든다.
이민노동자의 취약성은 여기에 더해진다. 체류 지위가 불안정하거나 영어 능력이 제한적인 경우, 부당한 대우를 경험해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돌봄노동은 여성화되고, 이민자화되고, 저임금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돌봄노동의 사회적 저평가와 이주노동자의 취약성이 결합한 결 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사례는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돌봄체계 유지에 필수적임에도, 노동권과 경력 경로, 안정적 처우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을 경우 돌봄체계 전체의 안정성 역시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대만·미국은 서로 다른 복지체계와 이민정책을 가지고 있지만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드러낸다. 첫째, 세 국가는 모두 외국인 돌봄노동자를 돌봄 수요 증가와 내국인 인력 부족에 대응하는 현실적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둘째,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가족 돌봄의 한계를 보완하고 재가 돌봄과 홈케어를 유지하는 핵심 인력으로 기능했다. 셋째,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외국인 돌봄노동이 낮은 비용과 취약한 권리 조건 속에서 운영될 때 발생하는 위험도 동시에 보여준다. 즉, 이들 국가는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필요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장 큰 공통 위험은 돌봄노동의 저평가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저비용 노동력으로 활용하면 돌봄노동은 전문성과 권리가 필요한 노동이라기보다, 낮은 비용으로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돌봄노동 전체의 임금과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고, 내국인 노동자의 진입 의지도 약화될 수 있다. 또한 가정 내 돌봄과 홈케어는 외부 감독이 어렵고 업무 범위가 흐려지기 쉽기 때문에 비공식 고용과 노동권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충분한 교육과 자격, 언어 지원 없이 현장에 배치될 경우 서비스 질 역시 개인의 경험과 선의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다고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을 단순히 실패한 모델로만 볼 수는 없다. 이탈리아의 바단테가 없었다면 많은 고령자가 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웠을 수 있고, 대만의 외국인 가정돌봄근로자가 없었다면 수많은 가족이 돌봄과 생계 사이에서 더 큰 부담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역시 이민 직접돌봄 노동자가 없다면 홈케어와 장기요양서비스는 훨씬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이 모델은 실제 돌봄 공백을 일정 부분 완화하는 데 기여해 왔다. 문제는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돌봄체계의 핵심 구성원으로 충분히 보호하고 제도화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한국이 이들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외국인 인력을 대규모로 도입하면 인력난이 해결된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이 노동권과 서비스 질, 공공성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역시 장기요양서비스 이용 규모와 재정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인력 부족과 재정 부담 문제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장기요양 급여 이용 수급자는 2014년 약 43만 명에서 2024년 114만 명 수준으로 증가하였고, 총 급여비용 역시 같은 기간 약 4조 원에서 16조 원 이상으로 확대되었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15; 2025).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외국인 인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의 대안처럼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비용 절감 논리가 정책의 중심이 될 경우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 서비스 질, 내국인 노동자의 지위, 사회적 수용성은 모두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이탈리아·대만·미국 사례는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돌봄 인력 부족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한 돌봄체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은 단기적으로 현실 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돌봄은 단순한 노동력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몸과 삶, 관계와 존엄에 깊이 연결된 영역이다. 속도와 비용만을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는 결국 돌봄의 신뢰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이 모델의 단기적 유용성을 인정하되,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동권 보장, 품질관리, 공공적 책임의 조건을 함께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