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015. 완벽한 모델은 없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제3장 해외사례가 보여주는 네 가지 제도화 방식

5. 완벽한 모델은 없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어떤 국가는 외국인 인력을 대규모로 받아들여 돌봄 공백을 빠르게 줄였지만, 노동권과 서비스 질 관리에서 취약성을 드러냈다. 어떤 국가는 자격과 언어, 교육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제도적 신뢰를 높이려 했지만, 실제 인력 확보에서는 한계를 보였다. 또 어떤 국가는 공공 장기요양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제도 밖의 비공식 노동이나 제도 안의 불안정 노동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이는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가 단일한 정책 문제가 아니라, 인력 수급, 서비스 질, 노동권, 체류 자격, 언어와 문화, 재정, 지역사회 정착, 사회적 수용성이 동시에 맞물리는 복합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완벽한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각 모델이 서로 다른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갖기 때문이다. 인력 충원을 빠르게 추진하면 단기적인 돌봄 공백은 완화될 수 있지만, 서비스 질과 노동권 관리가 약해질 수 있다. 자격과 언어 기준을 높이면 품질 신뢰는 높아지지만, 실제 인력 유입은 제한될 수 있다. 공공성을 강화하면 제도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재정 부담과 행정역량의 문제가 뒤따른다. 반대로 비용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돌봄노동의 가치와 노동권이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해외 사례는 “가장 좋은 모델”을 찾기 위한 자료라기보다, 각 제도화 방식이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고 어떤 한계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비교의 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모델인 저비용·대규모 충원 방식은 돌봄 인력난이 심각한 국가에서 가장 먼저 선택되기 쉬운 방식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가족 돌봄이 한계에 이르면 정부와 시장은 빠르게 투입 가능한 외국인 인력을 찾게 된다.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 돌봄 공백을 줄이고 가족 부담을 완화하며,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급 기반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낮은 비용으로 활용 가능한 인력으로만 이해할 경우, 돌봄노동은 전문성과 신뢰를 필요로 하는 노동이라기보다 비용 절감을 위해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이탈리아와 대만의 가족고용 중심 구조, 미국의 저임금 직접 돌봄 노동시장 경험은 이러한 위험을 잘 보여준다(OECD, 2023b; PHI, 2024; Santini et al., 2025).

두 번째 모델인 자격·언어·교육 중심 방식은 저비용 충원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접근이다. 일본과 프랑스는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단순히 현장에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한 자격과 언어 능력, 직업훈련을 거쳐 제도권 돌봄인력으로 편입하려 했다. 이 방식은 서비스 질과 이용자 신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돌봄 현장에서 언어는 안전과 직결되고, 자격은 직무 책임과 연결되며, 교육은 현장 적응과 전문성 형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준이 높을수록 외국인 근로자의 진입은 어려워진다. 일본은 일본어 능력과 국가자격 취득을 강조하면서 품질 관리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실제 정착률과 충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박수경, 2024; 新井康友, 2024). 프랑스 역시 공공 장기요양 지원체계와 직업훈련을 통해 외국인 인력을 제도권에 편입하려 했지만, 지역별·기관별 실행 격차가 남아 있다(EC, 2023; Keith & Cissoko, 2024). 이는 자격과 교육이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적인 경로와 충분한 지원 없이 높은 장벽으로만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세 번째 모델인 공공체계와 비공식 노동의 병존은 또 다른 교훈을 제공한다. 독일과 호주는 공공 장기요양체계 또는 국가 차원의 노인돌봄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돌봄 현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독일은 사회보험 방식의 장기요양보험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가정 내 장시간 돌봄 수요를 공적 서비스만으로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면서 동유럽 출신 비공식 돌봄노동에 의존하는 구조가 나타났다. 호주는 공공 노인돌봄체계 안에서 이주 돌봄노동자를 공식적으로 수용해 왔지만, 제도 안에서도 저임금, 과중한 업무, 불안정한 근무, 지역 격차가 반복되었다(ACCPA, 2024; Destatis, 2024; DHAC, 2024a). 이 사례들은 공공체계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도의 존재보다 중요한 것은그 제도가 실제 돌봄 수요를 얼마나 포괄하고, 노동권과 서비스 질을 어떻게 책임지는가이다.

네 번째 모델인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방식은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가 지향해야 할 규범적 방향을 제시한다. 영국, 호주, 독일의 경험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단순 노동력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 모델의 핵심은 임금, 휴게, 안전, 체류 안정성, 차별 방지, 권리구제, 언어·문화 지원, 지역사회 소속감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장기근속과 숙련 축적은 어렵고, 이는 곧 서비스 질과 사회적 수용성의 약화로 이어진다(ILO, 2024; Kavanagh et al., 2024; Kuhlmann et al., 2025). 다만 권리보장과 정착지원에는 비용과 행정역량이 필요하며, 이용자와 가족, 내국인 요양보호사, 기관과 지역사회의 인식 변화도 함께 요구된다. 따라서 이 모델은 방향으로서는 타당 하지만, 실제 구현을 위해서는 재정과 제도 운영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완벽한 해외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대만의 가족고용 모델은 가족 책임 중심 문화와 결합되어 발전했고, 일본의 자격 중심 모델은 국 가자격과 직업훈련을 중시하는 제도문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독일의 사회 보험형 장기요양체계는 복지국가의 역사와 노동시장 구조 위에 구축되었 으며, 호주는 다문화 이민사회라는 배경 속에서 이주 돌봄노동자를 수용해 왔다. 영국 역시 브렉시트 이후 이민정책 변화와 돌봄 인력난이 결합된 특수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국가의 모델도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제도는 단순히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장기요양보험 구조, 요양보호사 노동시장, 가족 돌봄 문화, 외국인 정책, 재정 여건에 맞게 조정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형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하나의 모델을 그대로 모방하기보다 여러 모델의 장점과 한계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저비용·대규모 충원의 유혹을 경계하면서도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자격과 언어, 교육 기준은 마련하되 외국인 근로자가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단계적 경로를 함께 설계해야한다. 장기요양보험이라는 공공체계를 활용하되, 재가 돌봄과 가족 돌봄 수요까지 고려하여 비공식 노동이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노동권과 인권, 사회적 포용을 핵심 가치로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과 행정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외사례의 네 가지 모델은 서로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한국형 제도화를 위한 구성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저비용·대규모 충원 모델은 인력 공백의 긴급성을 보여주고, 자격·언어·교육 중심 모델은 서비스 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다. 공공체계와 비공식 노동 병존 모델은 제도 설계의 빈틈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를 경고하며, 노동권·인권·사회적 포용 중심 모델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치 기준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 요소들을 균형 있게 결합하되 어느 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기울지 않는 제도 설계를 모색해야 한다.

결국 해외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가 단순한 인력 수급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문제를 “부족한 인력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로만 정의하면 정책은 충원 규모와 비용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지속 가능한 돌봄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보면 정책의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인력 확보뿐 아니라 서비스 질, 노동권, 사회적 수용성, 장기요양 재정, 지역사회 정착,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까지 함께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모델은 없다. 그러나 더 나은 설계는 가능하다. 핵심은 한국 사회가 돌봄을 어떤 가치로 이해할 것인가에 있다. 돌봄을 단순한 비용으로 보면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저렴한 노동력이 된다. 그러나 돌봄을 권리와 공공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들은 권리를 가진 돌봄노동자이자 장기요양체계의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느 한 국가 모델의 복제가 아니라, 인력 충원의 현실성, 자격·교육의 품질, 공공체계의 안정성, 노동권과 사회적 포용의 가치를 균형 있게 결합하는 것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의 목표는 단순히 사람을 더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지속 가능한 사회적 관계로 재설계하는 데 있다.

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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