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042. 재정 안정성과 돌봄 공공성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

제8장 돌봄 재정과 노동시장의 지속가능성

5. 재정 안정성과 돌봄 공공성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에서 중요한 과제는 재정 안정성과 돌봄 공공성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고령인구 증가와 장기요양 인정자 확대는 보험 재정 부담을 높이고 있으며, 보험료와 국고지원, 본인부담과 수가 조정 문제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돌봄은 단순한 서비스 구매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서비스 질과 노동권을 약화시키거나 가족에게 돌봄 책임을 다시 전가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결국 재정 안정성과 돌봄 공공성 사이에서 장기적인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재정 안정성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이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는 장기요양서비스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내국인 돌봄 인력 부족과 높은 이직률은 인력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재정 안정성이 곧 단순한 비용 절감을 의미해서는안 된다. 인건비와 교육, 감독 비용을 줄이고 가족과 시장에 책임을 넘기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지출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질 저하, 노동자 이탈, 가족 부담 증가라는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돌봄 공공성은 돌봄을 개인과 가족의 사적 책임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원리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이용자의 서비스 접근권과 서비스 질, 노동자의 권리, 비용 부담의 형평성, 지역사회 통합이 모두 포함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제도권 밖의 저렴한 노동력으로만 활용한다면 돌봄은 다시 가족의 구매력과 노동자의 취 약성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후퇴할 수 있다. 반대로 외국인 근로자를 공적 장기요양체계 안에 편입하고 교육과 자격, 노동권, 감독 체계를 함께 설계한다면 외국인 인력 도입은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재정 안정성과 공공성은 반드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공공성이 약한 돌봄체계는 단기적으로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비공식 고용 확대와 가족 부담 증가, 서비스 질 저하를 통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재정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공공성 확대는 보험 재정 압박을 심화시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돌봄에 필요한 비용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비용을 사회적으로 공정하게 배분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재정 안정성을 명분으로 한 저비용화 전략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 기준을 적용하거나 교육과 정착지원, 권리보장 비용을 최소화할 경우 외국인 근로자는 저임금 대체 인력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임금과 직업적 지위에도 하향 압력을 주고, 결국 돌봄노동 전체의 가치와 서비스 질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재정 안정성은 단순한 저비용 구조가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비용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과 교육비, 자격평가와 현장실습, 통역과 권리보장 비용은 제도 안에서 명확하게 산정되고 배분되어야 한다.

이 균형을 조정하는 핵심 장치는 장기요양보험 수가이다. 수가는 단순한 서비스 가격이 아니라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수가가 지나치게 낮으면 기관은 인건비와 교육비, 관리비를 줄이려는 압박을 받게 된다. 반대로 수가가 인상되더라도 그 증가분이 실제 노동자의 임금과 서비스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재정 투입의 정당성은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수가구조는 인건비와 교육·권리보장·품질관리 비용을 적절히 반영하되, 그 효과가 실제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점검하는 체계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

성과 기반 수가 연계는 이러한 균형을 만드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채용한 기관이 브리징 교육과 현장실습, 멘토링, 권리 안내, 가족 상담, 장기근속 지원 등을 충실히 운영할 경우 일정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만 성과지표는 단순 만족도나 장기근속률만으로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 만족도만 강조하면 노동자가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질 수 있고, 장기근속률만 강조하면 이동권 제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비스 질과 노동권, 이용자 안전과 기관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있는 평가구조가 필요하다.

최저임금과 본인부담 구조 역시 중요한 쟁점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에게 별도의 낮은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하거나 유사한 돌봄업무를 수행한다면 기본 노동기준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임금 차이는 국적이 아니라 자격과 숙련, 책임 수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며, 최 저임금은 돌봄노동의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적정 임금과 근로조건을 요구한다면 수가와 보험 재정 역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는 교육 축소와 휴게 미보장, 불안정 고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본인부담 문제 역시 단순히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수가 인상은 이용자와 가족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특히 장기 돌봄이 필요한 가구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본인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비스 질과 노동조건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소득수준과 돌봄 필요도에 따라 부담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더 취약한 계층에는 공적 지원을 강화하고, 부담 능력이 있는 계층은 일정 부분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공공성은 모든 비용을 무조건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돌봄을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비공식 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식 장기요양서비스의 접근성이 낮거나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가족은 더 저렴한 사적 고용이나 비공식 간병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비공식 고용은 노동권 보호와 서비스 질 관리, 사고 책임과 체류 관리 측면에서 큰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 이탈리아와 대만의 가족고용 중심 모델은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돌봄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했지만, 비공식 고용과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가 고착되면서 공공성과 품질관리 측면의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은 이미 장기요양보험이라는 공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만큼, 외국인 근로자 역시 공식 장기요양체계 안에서 교육과 자격, 노동권과 품질관리 체계 속에 편입될 필요가 있다.

돌봄 공공성은 재정 부담의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국민이 보험료와 세금, 본인부담을 통해 돌봄 비용을 함께 부 담하려면 그 비용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비용이 노동자의 적정 임금과 충분한 교육, 안전한 근로조건, 서비스 품질관리와 이용자 보호로 이어진다면 재정 부담은 사회적 투자로 이해될 수 있다. 반대로 비용이 증가해도 노동자의 처우와 서비스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도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기요양보험 재정 구조와 수가 인상 효과, 외국인 돌봄근로자 교육·정착지원 비용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재정 안정성과 공공성의 균형은 내국인·외국인 인력의 관계와도 연결된다. 외국인 인력을 낮은 비용으로 활용하면 단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낮춘다면 장기적 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인력 도입은 내국인 인력의 처우 개선과 전문성 강화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내국인 숙련 요양보호사는 멘토와 팀 리더로 인정받고, 외국인 근로자는 단계적 교육과 경력 경로를 통해 숙련 인력으로 성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보완적 분업은 노동시장 안정성과 서비스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이 될 수 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장기근속 역시 재정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외국인 인력을 모집하고 교육하며 입국 절차와 현장실습, 멘토링을 운영하는 데에는 상당한 초기 비용이 필요하다. 근로자가 짧은 기간만 일하고 이탈할 경우 이러한 비용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반대로 일정 기간 이상 근속하며 숙련을 축적하게 되면 초기 비용은 장기적인 성과로 전환될 수 있다. 숙련 인력이 증가하면 서비스 사고와 갈등 가능성이 줄어들고, 가족의 신뢰와 기관 운영의 안정성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류 안정성과 경력 인정, 전문교육과 지역사회 정착지원은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과 서비스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재정 안정성과 돌봄 공공성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외국인 돌봄근로자 도입을 단순한 재정 절감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둘째, 돌봄노동의 적정 비용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셋째, 보험료와 국고지원, 본인부담과 지자체 지원은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넷째, 재정 투입의 효과는 단순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교육 이수율, 장기근속률, 서비스 안전, 권리보장 수준까지 포함해 평가되어야 한다. 다섯째, 외국인 근로자의 경력 경로는 공식 제도 안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내국인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정책은 범부처 거버넌스 속에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장기요양 수가와 재정은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체류 안정성은 법무부, 노동권은 고용노동부, 정착지원은 지방자치단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따로 움직이면 비용과 책임은 분산되고 제도는 현장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는 재정과 노동, 이민과 복지, 지역사회 정책이 함께 작동하는 통합적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한 단기 처방이 아니다. 그것은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을 어떻게 공적으로 책임질 것인지, 그 비용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노동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존엄을 어떻게 함께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정책적 선택이다. 재정 안정성만 강조하면 돌봄은 값싼 노동으로 환원되고, 공공성만 선언하면서 비용 구조를 설계하지 않으면 제도는 지속되기 어렵다. 결국 필요한 것은 두 가치의 균형이다. 좋은 돌봄은 안정적인 재정 구조 위에서 가능하며, 안정적인 재정 구조는 돌봄의 공공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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