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말이 막히는 이유는 말솜씨가 아니라 구조다
3. 내가 말하고 싶은 것보다 상대가 알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한다
좋은 말하기는 내가 말하고 싶은 순서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이해하고 판단하기 쉬운 순서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누구에게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중요한 내용이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의 전체 과정일 수 있지만 상사에게는 현재 결과와 필요한 조치가 중요할 수 있고, 고객에게는 언제 문제가 해결되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 말의 구조는 내용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면접관은 지원자의 경험을 들을 때 사건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지원자가 어떤 판단과 행동을 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대학교 때 학과 행사를 준비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행사는 매년 진행되던 행사였고 여러 학년이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참여자가 많지 않았습니다.”라고 시작하면 배경은 알 수 있지만 지원자가 무엇을 했는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같은 경험을 “참여율이 낮았던 학과 행사에서 수요조사 결과를 반영해 프로그램과 홍보 방식을 바꾸고 신청 인원을 목표보다 높인 경험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면 첫 문장에서 지원자의 행동과 결과가 드러난다. 이후 행사의 배경과 구체적인 과정은 필요한 만큼 설명하면 된다.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담당자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보다 현재 업무가 어디까지 진행되었고 어떤 판단이 필요한지가 먼저이다. 담당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며칠간 여러 부서와 연락하고 자료를 다시 만들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상사가 지금 예산을 추가로 승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현재 예산으로 가능한가, 추가 비용은 얼마인가,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는가”이다. 노력의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상대의 결정과 관계가 있는 순서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회의에서는 상대가 자신의 입장을 빠르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지난번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때 시간이 많이 걸렸고, 물론 이번에는 인원이 더 많고 준비 기간도 있지만 고객 요구사항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외부 업체와도 협의해야 해서……”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발언자가 현재 안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음처럼 시작할 수 있다.
현재 일정안은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고객 요구사항과 외부 업체의 작업 범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지연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항을 먼저 확정한 뒤 최종 일정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첫 문장에서 발언의 방향이 드러나기 때문에 뒤에 이어지는 설명 역시 무엇을 위한 이유인지 이해하기 쉽다. 회의에서 말이 길어지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문제를 빠짐없이 설명하려 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보다 먼저 “그래서 이 안에 찬성한다는 것인가, 수정하자는 것인가?”를 알고 싶어 한다. 발언의 방향을 먼저 보여주면 같은 자료를 설명해도 훨씬 짧게 들린다.
고객이나 이용자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을 때 담당자는 오류의 기술적 원인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가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것은 자신의 신청이 정상적으로 처리되고 있는지, 언제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접수된 신청자료는 정상적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시스템 복구는 오후 3시까지 완료할 예정이며 별도로 다시 신청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먼저 알려준 뒤 필요하면 오류의 원인을 설명하는 편이 낫다. 상대에게 필요한 순서를 찾으면 전문적인 내용도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상대 중심으로 말한다는 것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라는 뜻은 아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나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결론도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다만 상대가 지금 무엇을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청이 승인되지 않았다면 규정의 긴 배경부터 설명하기보다 “현재 신청은 소득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 승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음 달 소득자료가 변경되면 다시 신청할 수 있으며 필요한 서류는 두 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불편한 사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의 의미와 다음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생각해도 불필요한 설명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 “상대는 지금 나에게서 무엇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면접에서는 답변의 첫 문장을 결정하고, 보고에서는 핵심 현황을 정하며, 회의에서는 입장을 분명하게 하고, 고객 응대에서는 필요한 조치를 앞에 놓게 한다. 자신의 말이 자꾸 길어진다면 상대보다 자신의 생각 순서를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좋은 말하기는 나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