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잘 듣는 사람이 핵심을 더 빨리 잡는다
말을 잘하는 것만으로 의사소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도 상대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하면 적절한 답을 하기 어렵다. 특히 회의나 면접, 상담, 고객 응대, 갈등 상황에서는 상대가 한 문장 안에 사실과 해석, 감정과 질문, 불만과 요구를 함께 담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 따라가면 말의 중심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말을 오래 기억하는 능력이라기보다 여러 내용 가운데 지금 대화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능력에 가깝다.
듣기는 흔히 말하기보다 수동적인 행동으로 생각된다. 상대가 말하는 동안 조용히 있고 끼어들지 않으면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듣는 동안에는 끊임없는 판단이 이루어진다. 무엇이 사실인지, 상대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질문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원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구분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말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잘 듣지 못하는 이유가 집중력 부족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말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답변을 준비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연결하거나, 상대의 의도를 추측한다. 한두 문장을 듣고 “아, 결국 이런 얘기군”이라고 결론을 내린 뒤 나머지는 그 결론에 맞춰 듣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가 실제로 말한 내용보다 내가 예상한 내용에 반응하게 된다. 특히 의견이 다르거나 감정이 섞인 상황에서는 이런 일이 더 쉽게 일어난다.
듣기의 목적은 상대의 모든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지 않다.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되 상대의 해석이나 평가까지 그대로 동의할 필요는 없다.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이 사실관계나 책임까지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들었고, 무엇은 아직 확인해야 하며, 무엇에 답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앞의 장들이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하는 방법을 다루었다면 이제부터는 상대의 생각을 구조화하여 듣는 방법을 살펴본다. 긴 말에서 문제와 원하는 결과를 찾는 방법,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는 방법, 질문의 문장 뒤에 있는 실제 요구를 읽는 방법, 이해한 내용을 요약하고 확인하는 방법을 차례로 살펴본다. 잘 듣는 능력이 생기면 자신의 답변도 자연스럽게 짧고 정확해진다. 상대가 묻지 않은 내용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1. 듣기는 답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상대가 말하는 동안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이전 경험을 떠올리고, 그 말에 동의하는지 판단하고,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준비한다. 때로는 상대의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결론을 내린다. 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이런 경향은 더강해진다. 문제는 답을 너무 일찍 준비하면 상대의 말 가운데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을 놓치기 쉽다는 데 있다. 회의에서 동료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해보자.
이번 시스템 도입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지금 일정대로 시행하면 현장 교육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특히 새로 배치 된 직원들은 기존 시스템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다음 주부터 바로 적용하면 초기 오류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시스템 도입 자체에는 동의한다’는 첫 문장을 듣고 찬성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뒤의 우려를 충분히 듣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일정대로 시행하면 어렵다”는 부분만 듣고 반대 의견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핵심은 시스템 도입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도입 시기를 조정하거나 교육기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에 가깝다.
상대가 말하는 동안 자신의 답을 먼저 준비하면 듣는 내용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일정은 이미 확정됐는데 어떻게 설명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상대의 우려가 타당한지보다 자신의 결정을 방어할 이유를 찾게 될 수 있다. 그러면 대화는 상대의 문제를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과정으로 바뀐다.
면접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면접관이 “팀원과 의견이 달랐던 경험과 그 과정에서 본인이 양보하거나 수정한 부분이 있다면 함께 말해보십시오.”라고 물었는데 ‘갈등 경험’이라는 단어만 듣고 준비했던 갈등 사례를 바로 말하기 시작하면 질문의 후반부를 놓칠 수 있다. 자신이 갈등을 해결했다는 이야기만 하고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는지는 답하지 않는 것이다. 말은 잘했지만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않은 셈이다.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가 말하는 동안 자신의 결론을 잠시 늦출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이라고 답할까?”보다 “상대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먼저 확인한다. 상대의 말을 모두 들은 뒤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고, 그다음 답을 준비한다. 몇 초의 차이지만 대화의 정확성은 크게 달라진다.
상대의 말을 듣는 동안 바로 반론이 떠오를 수도 있다. 사실이 틀렸다고 느껴지거나 자신이 부당하게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면 즉시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상대가 아직 말을 끝내지 않았다면 무엇에 대한 불만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반박하게 될 수 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동의하지 않는지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판단을 조금 늦추는 것이다.
듣기의 첫 번째 기준은 단순하다. 상대의 말이 끝난 뒤 “무슨 말을 했지?”가 아니라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말한 것은 무엇이지?”라고 스스로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그다음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시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