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돌봄사회와 사회서비스 체계
1. 돌봄사회와 돌봄국가
돌봄 사회는 인간의 상호 의존성과 누구에게나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회제도와 공공정책의 중심 원리로 인정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돌봄을 가족 내부의 사적인 책임이나 시장에서 구매하는 개인적 서비스로만 다루면 돌봄의 공백과 불평등, 노동의 저평가를 해결하기 어렵다. 돌봄 국가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여 국가가 돌봄의 보장, 재정, 서비스 제공 기반, 품질, 노동 조건에 관한 책임을 제도적으로 수행하는 발전된 복지국가 형태이다. 돌봄 사회와 돌봄 국가를 실현하려면 돌봄의 공공성을 바탕으로 국가뿐 아니라 가족, 지역사회, 비영리조직, 시장, 돌봄 당사자의 역할을 조정하고 핵심 정책 영역과 민주적인 운영 원리를 마련해야 한다.
1) 돌봄사회의 개념
돌봄 사회는 사람들이 돌봄을 주고받는 현실을 예외적인 의존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일반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돌봄을 받는 사람의존엄성과 자기결정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시간, 건강, 소득, 사회 참여도 동등하게 중요하게 다룬다. 경제와 정치, 행정의 성과는 생산량이나 효율성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이 필요한 돌봄을 적절한 시기에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돌봄 사회는 친절하고 헌신적인 개인이 많아지는 상태가 아니라 돌봄의 책임과 자원이 성별, 계층, 세대, 지역에 따라 불공정하게 배분되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사회이다. 이러한 의미의 돌봄은 민주주의의 부수적인 복지 업무가 아니라 시민들이 공동의 필요를 논의하고 책임을 나누는 정치적 실천이다(Tronto, 2013). 돌봄 사회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수동적인 보호 대상으로 분리하지 않고 일상생활과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으로 인정한다.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과 종사자도 무한한 희생을 요구받는 자원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권리를 가진 주체로 존중받는다. 공공정책은 돌봄의 양적 공급뿐 아니라 관계의 연속성, 이용자의 선택, 종사자의 전문성, 서비스의 사회적 가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돌봄 정책에는 이용자, 가족 돌봄자, 종사자, 지역 주민이 참여하여 필요한 지원의 우선순위와 비용·책임의 분담 방식을 논의해야 하며, 사회복지 실천은 개인의 필요를 지원하는 활동과 불평등한 돌봄 구조를 개선하는 제도적 활동을 연결해야 한다.
2) 돌봄국가의 등장 배경
전통적인 복지국가는 실업, 질병, 산업재해, 노령에 따른 소득 상실을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로 보완하는 소득 보장 기능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 가족 규모의 축소,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만성질환의 증가는 현금 급여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상생활 지원과 사회서비스의 수요를 늘렸다.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시장과 가족의 변화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나타나면서 보육, 장기요양, 일·생활의 조화, 지역사회 지원이 복지국가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Esping-Andersen, 1999). 기존 복지국가 분석이 유급 노동과 소득 지원에 집중하여 가족 안의 무급 돌봄과 성별 분업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여성주의적 비판도 돌봄 국가에 관한 논의를 촉진하였다(Lewis, 1992). 돌봄 국가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소득 보장과 함께 생활을 직접 지원하는 서비스와 돌봄 노동의 조건을 복지국가의 중심 기능에 포함하는 개념이다. 돌봄 국가의 등장은 가족의 역할이 사라지거나 모든 서비스를 공무원이 직접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는 돌봄을 사회적 권리로 인정하고 재원을 마련하며 서비스의 접근성과 품질, 노동 기준을 보장하는 최종적인 책임을 맡는다. 실제 서비스는 공공기관, 비영리기관, 협동조합, 민간기업, 지역사회 조직이 제공할 수 있지만, 공급 주체가 다양하다는 이유로 국가의 책임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돌봄 국가는 직접 공급, 이용권, 현금 급여, 세금 지원, 사회보험, 규제를 다양하게 결합할 수 있으며, 중요한 판단 기준은 공급자의 소유 형태보다 필요한 사람이 차별 없이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돌봄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는지에 있다 (Daly & Lewis, 2000).
3) 돌봄의 공공성과 국가 책임
돌봄의 공공성은 돌봄의 필요와 결과가 개별 가족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건강, 성평등, 고용, 교육 기회, 빈곤,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가족의 자원과 시장에서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에만 돌봄을 맡기면 저소득층과 돌봄 필요가 큰 사람의 이용이 제한되고, 돌봄 부담이 여성과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집중될 수 있다. 국가의 책임은 돌봄을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하는 필요로 인정하고 최소한의 보장 수준과 재정, 서비스 제공 체계를 마련하는 데서 시작한다. 국가는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지 않더라도 자격 기준, 가격, 인력 배치, 안전, 개인정보, 권리 구제, 기관의 책임에 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인 돌봄 정책도 권리 중심의 접근과 국가의 일차적 책임을 서비스 제공, 재정 지원, 관리, 품질 보장의 핵심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ILO, 2024). 돌봄의 공공성은 서비스가 실제로 마련되어 있는 상태뿐 아니라 지역, 소득, 장애, 성별, 연령, 가족 형태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을 포함한다. 중앙정부가 전국적인 권리와 재정 기준을 마련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인구와 자원, 생활 환경을 반영하여 서비스 공급을 조정하지 못하면 지역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민간기관에 서비스 제공을 맡기거나 이용권 방식을 적용할 때에도 공공부문은 공급량, 가격, 품질, 노동 조건, 부당한 이용자 선별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용자와 가족, 종사자가 정책과 기관 운영에 참여하고 부당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의 책임은 예산 규모뿐 아니라 돌봄 공백의 감소와 서비스의 질, 돌봄 노동자의 권리가 실제로 개선되었는지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
4) 돌봄국가의 주요 정책 영역
돌봄 국가의 정책 영역에는 영유아 보육과 교육, 장애인 활동 지원, 노인 장기요양, 보건의료와 재활, 정신건강, 일상생활 지원이 포함된다. 출산·육아·가족 돌봄 휴가와 유연근무제도는 고용을 유지하면서 돌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한다. 아동수당, 돌봄수당, 사회보험, 세금 지원과 같은 현금 정책은 돌봄 비용을 분담하지만, 충분한 공공서비스가 없으면 가족의 무급 돌봄을 고착시킬 수 있다. 가족 돌봄자를 위한 교육, 상담, 휴식, 건강 관리, 소득 보장은 돌봄을 받는 사람의 서비스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돌봄 종사자의 교육과 자격, 적절한 임금, 안전, 고용 안정, 사회보장, 단체교섭권도 서비스의 질과 돌봄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정책 영역이다. 통합적인 돌봄 정책은 무급 돌봄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과도한 부담을 줄이며, 가족 구성원 사이와 가구·국가 사이에서 책임을 다시 나누어야 한다. 유급 돌봄 노동에는 숙련도와 책임에 맞는 보상을 제공하고 종사자가 정책과 노동조건의 결정에 집단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은 무급 돌봄의 인정·감소·재분배와 유급 돌봄 노동의 보상·대표를 결합한 5R 정책 체계로 정리된다(ILO, 2018). 돌봄 국가의 정책은 보육이나 장기요양과 같은 개별 제도를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 성평등, 주거, 보건의료, 이민, 지역 정책과 연결되어야 하며, 이용자 수뿐 아니라 충족되지 않은 필요, 가족 부담, 성별 돌봄 시간의 차이, 종사자의 노동 조건, 서비스의 질, 지역 간 접근성의 변화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