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돌봄사회와 사회서비스 체계
2. 가족 돌봄에서 사회적 돌봄으로의 전환
가족은 오랫동안 아동 양육과 질병·장애·노화에 따른 돌봄을 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 단위로 기능해 왔다. 전통적인 가족 돌봄은 친밀감과 상호 지원을 제공했지만, 책임이 여성과 특정 세대에게 집중되고 무급 노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가족 규모의 축소, 1인 가구와 고령 가구의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과 인구 이동은 가족만으로 지속적인 돌봄을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사회적 돌봄으로의 전환은 가족관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선택과 능력을 존중하면서 시장, 지역사회, 국가가 책임과 비용을 함께 분담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돌봄의 사회화와 가족의 부담을 줄이는 탈가족화, 각 주체의 적절한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1) 전통적 가족 돌봄의 구조
전통적인 가족 돌봄은 부양과 양육을 가족의 도덕적 의무로 여기고 배우자·부모·성인 자녀 등 친족이 일상적인 지원을 무급으로 제공하는 구조이다. 남성은 소득을 얻고 여성은 가사와 돌봄을 담당한다는 남성 생계 부양자 모형은 가족 안의 성별 분업과 복지제도의 자격 구조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Lewis, 1992). 가족 돌봄은 노동계약이나 서비스 기록 없이도 장시간의 신체 노동, 정서적 책임, 일정 관리, 위험 대응을 포함하지만 이를 사랑과 효도의 표현으로만 이해하면 돌봄에 드는 시간과 비용, 돌봄자의 소진이 개인적인 문제로 남는다. 또한 전통적 구조는 가족에게 충분한 시간·소득·관계 자원이 있다고 가정하지만, 실제 돌봄 능력은 계층, 성별, 건강, 가족관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가족 돌봄은 이용자의 삶과 선호에 대한 이해, 정서적 안정, 관계의 연속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관계가 항상 좋은 돌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갈등, 통제, 학대, 방임, 경제적 의존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여성, 장녀, 취업하지 않은 사람, 가까이 사는 가족 구성원이 사실상 선택권 없이 책임을 떠맡는 경우가 많다. 공적 제도가 가족 돌봄을 당연하게 여기면 이용자와 가족 돌봄자 모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기 어려워지므로, 사회복지 실천은 가족의 헌신을 무조건 높이 평가하거나 문제로만 보지 않고 가족관계의 강점과 부담, 이용자의 권리를 함께 살펴야 한다.
2) 가족구조와 돌봄환경의 변화
가구원 수의 감소와 1인 가구·부부 가구의 증가는 일상적인 돌봄을 나눌 가족 구성원의 수와 함께 살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비혼과 만혼, 이혼과 재혼, 자녀 수 감소, 세대 간 분거는 가족 형태를 다양하게 만드는 동시에 혈연과 동거를 바탕으로 한 돌봄 기반을 약화시킨다. 한국의 장래가구추계에서도 1인 가구와 부부 가구는 증가하고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는 감소하며, 고령 가구의 비중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통계청, 2024). 교육·취업을 위한 지역 이동과 국제 이주도 가족이 있더라도 일상적인 대면 돌봄을 어렵게 한다. 이는 가족의 해체라기보다 가족 형태와 관계망이 다양해지면서 돌봄을 함께 사는 가족의 책임만으로 설계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여성의 경제활동과 맞벌이 가구의 증가는 가족의 소득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한 사람이 온종일 무급 돌봄을 담당하기 어려운 시간 구조를 만든다.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 교대근무, 플랫폼 노동은 돌봄 시간을 계획하고 휴가를 사용하는 일을 어렵게 하며 가족 간의 분담을 제한한다. 기대수명의 연장과 만성질환의 증가는 돌봄 기간을 늘리고 고령의 배우자가 서로를 돌보거나 자녀가 고령의 부모를 돌보는 이중 부담을 발생시킨다. 공공서비스가 충분히 확대되지 않으면 돌봄 공백과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 유급 가사·돌봄 노동자에 대한 의존이 늘어날 수 있으므로(ILO, 2018), 변화한 돌봄 환경에는 가족의 책임을 강화하기보다 돌봄 시간의 보장, 지역 서비스, 소득 보장, 긴급 지원을 결합한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
3) 돌봄의 사회화와 탈가족화
돌봄의 사회화는 가족 안에서 무급으로 맡아 온 책임과 비용을 공공서비스, 사회보험, 세금, 유급 노동, 지역사회 지원을 통해 사회 전체가 나누는 과정이다. 탈가족화는 개인이 가족이나 가족 구성원의 무급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적절한 돌봄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정책적 역량을 의미한다. 이는 가족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강요된 의무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유급 휴가, 소득 지원, 가족 돌봄자 지원을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따라 가족의 돌봄 역할을 강화하거나 대신하는 다양한 가족주의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Leitner, 2003). 바람직한 전환은 가족의 참여를 인정하면서도 가족이 없거나 돌볼 수 없는 사람에게 동등한 돌봄을 보장하는 권리 중심의 구조를 지향한다. 돌봄의 사회화는 여성에게 집중된 무급 노동을 줄이고 가족 돌봄자의 고용·소득·건강을 보호하며 이용자의 선택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저임금 민간 서비스나 현금 급여에만 의존하면 돌봄 부담이 저소득 여성과 이주 노동자에게 옮겨 가거나 가족에게 계속 떠넘겨질 수 있다. 따라서 탈가족화와 가족 지원은 서로 대립하는 정책이 아니라 가족 돌봄과 공식 서비스 중에서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상호 보완적 수단이며(Daly & Lewis, 2000), 사회적 돌봄은 책임이 자발적이고 공정하게 분담되는지와 질 높은 대안 서비스가 보장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4) 가족·시장·지역사회·국가의 역할
돌봄 체계는 가족, 시장, 지역사회, 국가가 서로 다른 자원과 원리에 따라 돌봄을 제공하고 배분하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은 친밀감과 이용자의 삶에 대한 이해, 지속적인 관계를 제공하고 시장은 다양한 전문 서비스와 신속한 공급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지역사회와 비영리조직은 주민 참여, 상호 지원, 권익 옹호를 바탕으로 공공제도가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필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국가는 돌봄을 권리로 보장하고 재원을 마련하며 서비스 공급 기반과 노동 기준, 품질 관리 체계를 구축할 책임을 맡는다. 이 네 주체가 구성하는 돌봄 다이아몬드의 관점은 한 영역의 역할 변화가 다른 영역의 부담과 권력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도록 돕는다(Razavi, 2007).
국가는 보편적인 이용 기준과 충분한 공공 재정을 마련하여 가족 형태나 경제력에 따라 돌봄의 질이 달라지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시장은 선택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수익성이 낮은 지역이나 돌봄 필요가 큰 이용자를 배제하고 인건비를 줄여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려 할 위험이 있어 강한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 지역사회 조직은 신뢰와 접근성을 바탕으로 공공 체계를 보완할 수 있지만 자원봉사와 주민의 선의에 지속적인 전문 돌봄의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된다. 가족은 이용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정서적 관계와 일상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지만 공식 서비스의 부족을 메우는 최종 책임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는 최종 책임을 유지하면서 이용자와 가족의 선택을 보장하고 시장과 지역사회의 자원을 공공 기준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