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돌봄 위기는 왜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필요로 하는가
3. 가족 돌봄의 한계와 사회적 돌봄으로의 전환
오랫동안 돌봄은 가족의 책임으로 이해되어 왔다. 부모가 나이 들면 자녀가 돌보고, 병든 가족이 생기면 가족 구성원이 곁을 지키는 것이 당 연한 일로 여겨졌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노부모 돌봄은 효, 책임, 희생의 가치와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돌봄은 사회적 권리라기보다 가족 내부에서 감당해야 할 의무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 중심 돌봄 구조는 오늘날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이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고령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가족 규모는 축소되고 있다. 1인 가구, 노인 단독가구,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면서 가족 내부에서 돌봄을 전담할 사람을 찾기 어려운 상황도 확대되고 있다. 과거처럼 여러 자녀가 부모 돌봄을 나누어 맡는 구조는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다. 이는 가족의 책임감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가족이 돌봄을 수행할 수 있었던 인구학적·사회경제적 기반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가족 돌봄의 부담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집중되어 왔다. 노부모 돌봄, 배우자 돌봄, 장애 가족 돌봄은 대체로 딸, 며느리, 아내의 역할로 여겨 졌고, 그 과정에서 무급노동, 경력단절, 신체적 피로, 정서적 소진이 발 생하였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확대되고 가족의 생애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돌봄을 특정 성별이나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가족 돌봄의 한계는 단순히 가족 기능의 약화가 아니라, 돌봄 책임이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온 구조의 한계이기도 하다.
돌봄 기간의 장기화도 가족 돌봄의 부담을 심화시킨다.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만성질환 관리가 가능해지면서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신체기능 저하와 같은 상태는 수년 이상 지속적인 돌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족돌봄자는 병원 동행, 식사 준비, 복약 관리, 이동 보조, 정서적 지원, 응급상황 대응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돌봄이 장기화될 수록 가족의 일상은 돌봄 일정에 맞추어 재편된다. 특히 치매 돌봄은 우울, 불안, 수면 부족, 사회적 고립을 동반하기 쉽다. 가족의 사랑과 책임 만으로 장기 돌봄을 지속하기 어려운 현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가족 돌봄 부담은 경제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장년층은 부모 돌봄과 생계노동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이중 부담 속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직, 조기퇴직, 경력단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돌봄 부담은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구는 방문요양, 간병, 시설서비스 등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저소득층은 가족의 직접 돌봄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족 돌봄의 한계는 사적 문제가 아니라 성별, 계층, 고용형태에 따라 부담이 다르게 배분되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가족의 역할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족은 돌봄 대상자의 생활사, 선호, 관계망, 정서적 욕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문제는 가족이 돌봄의 전부를 감당해야 한다는 전제에 있다. 가족은 돌봄의 유일한 수행자가 아니라 사회적 돌봄체계 안에서 함께 참여하는 협력자로 재위치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족 돌봄을 넘어 사회적 돌봄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사회적 돌봄은 돌봄을 가족 내부의 사적 책임이 아니라 국가, 지역사회, 공공제도, 전문인력이 함께 분담해야 할 사회적 책임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는 돌봄을 가족의 희생에 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필요할 때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돌봄은 가족이 실패했을 때 제공되는 보충적 서비스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사회권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Pfau-Effinger, 2012). 이 관점에서 돌봄정책은 가족을 대신하는 장치가 아니라 가족이 돌봄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이러한 사회적 돌봄 전환의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다. 장기요양 등급 인정과 재가·시설급여 제공을 통해 노인 돌봄을 가족 내부의 책임에서 사회적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노인 돌봄을 더 이상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사회적 돌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요양보호사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거나, 서비스 제공 시간이 이용자의 돌봄 욕구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한다면 가족은 여전히 돌봄 조정과 보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게 된다(보건복지부, 2023).
따라서 사회적 돌봄의 핵심은 제도와 인력의 결합에 있다. 가족이 돌봄의 전부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공백은 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 돌봄 인력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족의 부담이 단지 저임금 돌봄노동자에게 이전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돌봄의 사회화는 책임을 공적으로 분담하는 과정이어야하며,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모두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 도입 문제도 단순한 인력 수급 차 원에서만 이해하기 어렵다. 고령화와 가족 돌봄의 약화 속에서 외국인 인력 활용은 하나의 정책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족의 부담을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장기요양체계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면 자격, 교육, 언어 능력, 노동권 보장, 서비스 질 관리, 지역사회 적응이 공적 기준 안에서 함께 관리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돌봄을 담당하느냐만이 아니라, 어떤 조건 속에서 돌봄이 이루어지느냐이다.
사회적 돌봄으로의 전환은 돌봄 책임을 새롭게 배분하는 과정이다. 가족, 국가, 시장, 지역사회는 각각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 역할 들이 균형 있게 조정될 때 돌봄체계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노인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익숙한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방문요양,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식사 지원, 이동 지원, 응급 대응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사회적 돌봄은 하나의 서비스가 아니라 삶의 환경 전체를 조정하는 체계이다.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의 핵심 질문은 “누가 가족을 대신할 것인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가족이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사회는 어떤 제도와 인력체계를 마련할 것인가”이다. 가족 돌봄의 한계는 가족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돌봄을 사회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이제 돌봄은 가정 안에 머무는 사적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고 설계해야 할 공적 과제로 전환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