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005. 문제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제도화의 조건이다

제1장 돌봄 위기는 왜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필요로 하는가

5. 문제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제도화의 조건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둘러싼 논의는 그동안 주로 찬반의 언어로 전개되어 왔다. 한쪽에서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요양보호사 부족을 근거로 외국인 인력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서비스 질 저하, 노동권 침해, 내국인 일자리 위축, 사회적 갈등 가능성을 우려한다. 두 입장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돌봄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도 분명하지만, 외국인 인력 도입이 새로운 불평등과 갈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가볍게볼 수 없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도입 찬반을 넘어, 어떤 조건과 기준 속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제도화할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

제도화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정책 설계에 따라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의 성격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외국인 인력 도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저비용 인력 충원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아니면 서비스 질과 노동권, 사회적 수용성, 지역사회 정착, 재정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으로 설계되는지에 따라 정책의 효과는 달라진다. 전자의 방식은 단기적으로 인력난을 완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돌봄노동의 저평가와 서비스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 반대로 후자의 방식은 더 많은 준비와 비용을 요구하지만,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장기요양체계의 안정적인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단순히 외국인에게 취업 자격을 부여하는 행정적 조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장기요양보험, 노동시장, 체류관리, 교육훈련체계, 지역사회 정착지원, 서비스 품질관리, 이용자 보호가 서로 연결되는 복합적 사회정책의 문제이다. 외국인 인력이 돌봄 현장에 들어 오는 순간, 그들은 단순한 노동력 공급자가 아니라 이용자의 삶과 일상에 직접 관여하는 돌봄 주체가 된다. 따라서 제도화의 방식은 노동자의 권리, 이용자의 신뢰, 기관의 관리책임, 장기요양체계의 지속가능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논의의 출발점에는 돌봄 인력 부족 문제가 있다. 고령화와 장기요양서비스 확대에 따라 요양보호사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낮은 임금, 높은 노동강도, 불안정한 고용조건으로 인해 내국인 인력의 신규 유입과 장기근속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인 돌봄근로자 활용 논의를 정책적 대안으로 부상시 키고 있다. 그러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곧바로 모든 방식의 외국인 인력 도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족한 인력을 얼마나 빨리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노동조건과 제도적 환경 속에서 돌봄이 이루어질 것인가이다.

이 점에서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은 인력 충원과 서비스 질 관리의 균형을 요구한다. 돌봄은 신체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 관계 형성, 안전관리, 이용자 상태 관찰, 가족과의 의사소통을 포함하는 복합 서비스이다. 따라서 외국인 돌봄근로자에게는 단순한 취업 능력을 넘어 돌봄 현장에 필요한 언어 능력, 치매와 중증 노인에 대한 이해, 응급상황 대응 능력, 기관 및 가족과의 의사소통 능력이 함께 요구된다(김연홍·장신철, 2025; 장주영, 2025).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이 단순한 숫자 확대가 아니라 교육, 자격, 현장 지원체계와 함께 검토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권 보장 역시 핵심 조건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체류 자격, 언어 장벽, 제도 정보 부족, 사회적 관계망의 취약성으로 인해 권리 침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휴게시간 미보장, 폭언과 차별, 체류 불안정은 노동자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서비스 제공의 불안정, 현장 갈등, 이용자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돌봄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양질의 일자리와 안전한 노동조건, 차별 없는 권리 보장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ILO, 2024). 결국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은 인력 확보와 노동권 보장을 분리 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사회적 수용성도 제도화의 중요한 조건이다. 돌봄은 이용자의 생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밀접한 관계 중심의 서비스이다. 이용자와 가족은 돌봄노동자에게 신체적·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언어와 문화, 생활습관 차이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일방적인 적응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용자와 가족, 내국인 요양보호사, 장기요양기관, 지역사회 역시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정보 제공, 의사소통 지원, 갈등 조정, 차별 방지 체계가 함께 마련될 때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돌봄 현장의 낯선 존재가 아니라 제도 안에서 신뢰받는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제도 간 정합성도 중요하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은 어느 한 부처의 영역에만 속하지 않는다. 체류 자격은 법무부, 근로조건은 고용노동부, 장기요양서비스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사회 정착은 지방자치단체와 연결된다. 체류 자격은 허용되었지만 자격취득 경로가 불 분명하거나, 교육은 이루어졌지만 현장 배치와 감독 체계가 미비하다면 제도는 현장에서 혼선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자격, 교육, 배치, 임금, 감독, 권리보장, 지역 정착이 연결된 통합적 체계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재정 문제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도입한다고 해서 비용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집과 선발, 언어교육, 현장실습, 자격관리, 상담과 통역,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는 지속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외국인 인력 도입을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접근할 경우, 낮은 임금과 불안정 고용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채민석 등, 2024). 외국인 돌봄근로자 정책은 무비용의 대안이 아니라 적절한 투자와 관리가 필요한 사회정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외국인 돌봄근로자 논의의 핵심은 도입 여부 자체보다 제도화의 조건에 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부족한 인력을 메우는 임시적 대체 인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장기요양체계의 공식적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정책의 방향은 달라진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는 단순한 인력 충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돌봄 서비스의 질, 노동권 보장, 사회적 수용성, 제도 간 정합성, 재정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하는 복합적 사회정책 과제이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도입은 점차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이 지속 가능한 돌봄체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분명한 원칙과 제도적 조건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후의 논의는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도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머물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어떤 노동으로 인정할 것인가, 어떤 권리와 책임을 부여할 것인가, 어떤 교육과 자격 기준을 마련할 것인가, 이용자와 가족의 신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비용과 책임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단순한 대체 인력이 아니라 돌봄체계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주체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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