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013. 공공체계·비공식 노동 병존 모델

제3장 해외사례가 보여주는 네 가지 제도화 방식

3. 공공체계·비공식 노동 병존 모델

일본과 프랑스가 자격·언어·교육을 통해 외국인 돌봄근로자의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려는 사례라면, 독일과 호주는 또 다른 쟁점을 보여준다. 두 국가는 모두 공공 장기요양체계 또는 국가 차원의 노인돌봄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국가가 일정 수준에서 돌봄서비스의 공공성과 품질을 관리하려는 제도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돌봄 현장에서는 제도권 안의 공식 노동과 제도권 밖의 비공식·불안정 노동이 함께 존재한다. 이는 공공체계가 존재한다고 해서 돌봄노동이 자동으로 안정되고 보호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독일과 호주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국가가 장기요양제도를 운영하고 일정한 서비스 기준과 재정 지원을 마련하더라도, 왜 비공식 노동과 불안정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가. 왜 외국인 돌봄근로자는 공공체계 안에 들어오거나 그 주변에서 일하면서도 여전히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언어 장벽, 자격 인정의 어려움에 직면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한국에도 중요하다. 한국 역시 장기요양보험이라는 공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제도가 실제 돌봄 수요와 노동조건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면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 과정에서 비공식·불안정 노동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호주의 공통점은 국가가 돌봄에 일정한 책임을 지는 공공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사회보험 방식의 장기요양보험을 운영해 왔고, 호주는 국가 차원의 노인돌봄체계 안에서 서비스 품질과 재정 지원을 관리해 왔다. 두 국가는 모두 돌봄을 전적으로 가족이나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공공체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실제 돌봄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 비용 부담, 지역 격차, 노동조건의 취약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ACCPA, 2024; Destatis, 2024). 그 결과 외국인 돌봄근로자와 이주 배경 노동자는 공식 영역과 비공식 영역을 넘나들며 돌봄체계의 중요한 인력으로 기 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공공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공공체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비스 질, 노동권, 사회적 수용성이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제도가 실제 수요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거나, 서비스 비용과 인력 배치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가족과 기관은 제도 밖의 대안을 찾게 된다. 가족은 더 저렴하고 유연한 돌봄을 원하고, 기관은 인력난 속에서 다양한 고용 경로를 활용하려 하며, 외국인 노동자는 공식 경로 진입이 어려울 경우 비공식 노동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결국 공공체계와 비공식 노동의 병존은 공공제도와 실제 돌봄 수요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독일은 이러한 병존 구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독일은 1995년 사회보험 방식의 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여 노인 돌봄을 공적으로 제도화하였다. 장기요양보험은 돌봄을 가족의 사적 책임에만 맡기지 않고 사회보험 체계 안에서 지원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장기요양 수요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재가서비스와 시설서비스에 대한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가족 부담을 완화하는 중요한 제도적 전환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장기요양보험은 모든 돌봄 수요를 충분히 충족하지는 못했다. 급여 수준과 서비스 시간에는 제한이 있었고, 가족은 여전히 돌봄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야 했다. 특히 치매 노인이나 중증 노인처럼 장시간 돌봄이 필요한 경우 공적 서비스만으로는 가족이 원하는 수준의 돌봄을 제공하기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출신 이주노동자가 독일 가정에서 돌봄을 담당하는 방식이 확대되었다. 이들은 고령자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거나 장시간 노동 형태로 일하며, 공적 제도가 충족하지 못하는 돌봄 시간을 보완하였다.

동유럽 출신 돌봄노동자의 확대는 독일의 고령화, 가족 돌봄 부담, 장기요양보험 급여의 제한성, 내국인 돌봄인력 부족, 유럽 내 노동이동의 자유가 결합한 결과였다. 독일 가족은 시설 입소보다 가정에서의 돌봄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고, 공적 재가서비스만으로 부족한 시간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동유럽 출신 돌봄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장시간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활용되었다. 독일 사례는 공공 장기요양체계가 존재하더라도 가족의 실제 돌봄 수요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할 경우, 비공식 또는 반공식 외국인 돌봄노동이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들이 독일 돌봄체계의 실질적 일부가 되었음에도 제도적 보호와 감독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거형 돌봄은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가 흐려지기 쉽다. 가족은 돌봄노동자를 ‘함께 사는 사람’ 또는 ‘가족 같은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실제 노동자는 지속적인 대기 상태와 반복적 요구에 노출될 수 있다. 돌봄과 가사, 정서지원과 생활보조의 경계도 불분명해진다. 이처럼 공적 장기요양보험이 존재하더라도 그 틈새에서 비공식 돌봄노동은 확장될 수 있다.

독일의 공공체계는 한편으로는 전문 돌봄인력의 자격과 서비스 기준을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 내 이주노동자의 비공식 돌봄을 완전히 포괄하지 못한다. 그 결과 독일 돌봄체계 안에는 두 개의 노동시장이 병존한다. 하나는 자격을 갖춘 공식 돌봄인력과 기관 중심의 노동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 안에서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는 이주 돌봄노동자의 비공식 또는 반공식 노동시장이다. 전자는 제도적 기준과 감독을 받 지만 인력 부족과 노동강도 문제를 겪고, 후자는 가족의 돌봄 부담을 완 화하지만 노동권 보호와 서비스 질 관리가 취약하다. 독일 사례는 공공체계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돌봄 수요와 노동 현실을 충분히 제도 안으로 흡수하지 못하면 이중적 노동시장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중 구조는 자격 인정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독일은 외국에서 취득한 돌봄 관련 자격을 국내에서 인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왔다. 이는 외국인 전문인력이 합법적으로 독일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실제 절차는 복잡하고, 언어 능력과 보완교육, 행정 절차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일부 외국인 돌봄인력은 공식 전문직 경로에 진입하지 못하고 보조 업무나 비공식 영역에 머 물게 된다(Ritter, 2024). 이는 숙련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낮은 임금과 낮은 지위의 노동시장에 머무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독일은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국제 인력 유치와 자격 인정, 노동권 보호 정책을 확대해 왔다. 예컨대 필리핀 등과 협력해 간호 인력을 합법적으로 채용·배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Peppler, 2024). 이는 비공식 중개와 불안정 고용을 줄이고 외국인 인력을 공식 제도 안에서 활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공식 경로가 확대되더라도 가정 내 장시간 돌봄 수요가 계속 존재하는 한, 비공식 돌봄노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독일 사례는 공공 장기요양보험만으로는 돌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으며, 가족의 실제 돌봄 부담과 제도 밖 노동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보여준다.

호주는 독일과 다른 제도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공공체계와 불안정 노동이 병존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문제를 드러낸다. 호주는 국가 차원에서 노인돌봄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시설돌봄과 재가돌봄에 대한 공적 지원과 품질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한 다문화 사회로서 이민 인력을 돌봄 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호주의 노인돌봄 분야에서 이주 배경 노동자는 중요한 인력 기반이며, 특히 지역사회 돌봄과 시설돌봄 현장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호주의 장점은 외국인 또는 이주 배경 노동자가 공공체계 안의 기관에 공식적으로 고용되어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가의 품질관리와 노동 규제의 적용을 받으며, 이는 가족고용 중심 모델보다 제도적 관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호주 사례는 공식 제도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노동조건이 자동으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공식 고용은 필요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안정적 노동과 높은 서비스 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호주 노인돌봄 분야에서는 낮은 임금, 높은 노동강도, 불규칙한 근무, 직무 스트레스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특히 이주 배경 노동자는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 차별, 경력 인정의 어려움, 가족 분리와 지역사회 고립을 경험할 수 있다. 이들은 공공체계 안에서 일하지만 그 안에서도 취약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ACCPA, 2024; DHAC, 2024a). 결국 공식 고용이라는 형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임금, 근로시간, 교육, 권리구제의 실효성이 함께 보장되어야 비로소 제도 안의 노동이 안정될 수 있다.

호주의 또 다른 쟁점은 지역 격차이다. 대도시와 지방, 접근성이 좋은 지역과 취약 지역 사이에는 돌봄 인력 확보와 서비스 품질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이주 돌봄노동자는 인력 부족 지역에 배치될 수 있지만, 해당 지역에 주거와 교통, 언어지원과 문화적 커뮤니티가 부족하면 장기 정착이 어렵다. 결국 외국인 인력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지방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역사회 차원의 정착지원과 생활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의 농어촌과 지방 중소 도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호주의 경험은 공공체계 안에서도 돌봄노동이 구조적으로 저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돌봄은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이지만, 실제 임금과 사회적 평가는 그 중요성에 비해 낮게 유지될 수 있다. 인력난이 심화될 수록 이주노동자 유입은 확대되지만,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들 역시 오래 머물기 어렵다. 결국 인력 충원과 이탈이 반복되고 서비스의 연속성과 질은 약화될 수 있다. 호주는 외국인 인력을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돌봄노동 자체의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일과 호주의 차이는 분명하다. 독일은 공공 장기요양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가정 내 장시간 돌봄 수요를 충분히 제도권으로 흡수하지 못해 비공식 이주 돌봄노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호주는 공공 노인돌봄체계 안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지만, 그 안에서도 저임금, 불안정 노동, 지역 격차 문제가 지속된다. 독일의 문제는 제도밖 비공식 노동의 확산이고, 호주의 문제는 제도 안 불안정 노동의 지속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례는 결국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공공체계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공공체계가 돌봄 수요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면 제도 밖 비공식 노동이 생겨난다. 반대로 공공체계 안에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받아들이더라도 노동조건과 정착지원이 충분하지 않으면 제도 안 불안정 노동이 지속된다. 결국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공공체계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그 체계가 실제로 노동권, 서비스 질, 재정, 지역사회 정착을 얼마나 포괄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독일과 호주의 경험은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역시 장기요양보험이라는 공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제도의 존재만으로 외국인 돌봄근로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장기요양체계 안에 편입하더라도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 언어 장벽과 차별, 불안정한 체류와 지역사회 고립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실질적 제도화가 아니라 불안정 노동의 공식화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제도 밖에서 개별 가구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 확 대되면 노동권 보호와 서비스 질 관리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외국인 돌봄근로자를 공공체계 안으로 형식적으로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비공식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속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비공식 노동은 단순히 법을 회피하려는 의도 때문만이 아니라, 제도권 서비스가 부족하거나 비용 부담이 크고, 공식 고용 절차가 복잡하며, 가족의 장시간 돌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비공식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식 제도가 현실적인 대안이 되어야 한다. 가족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고, 기관이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어야 하며, 노동자 역시 공식 경로를 통해 일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결국 독일과 호주의 경험은 공공성과 노동권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공 장기요양체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체계가 노동자를 보 호하지 못하면 공공성은 약화된다. 공공성은 단순히 국가가 비용을 지원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용자가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받고, 노동자가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때 공공성은 실질화된다. 외국인 돌봄근로자가 그 구조 안에서 여전히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면, 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독일과 호주의 경험은 공공체계가 있어도 비공식·불안정 노동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공체계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외국인 돌봄근로자 제도화가 지속 가능하려면 인력 수급을 넘어 노동권, 서비스 질, 자격 인정, 지역 정착, 재정 책임을 함께 포괄해야한다. 결국 돌봄의 공공성은 제도의 존재가 아니라 노동자와 이용자, 가족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능력에서 확인된다.

돌봄의 빈자리, 어떻게 채울 것인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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